달라이라마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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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법의 은혜
달라이라마의 보리도의 길 - 첫 번째

“보리심을 일으키는 순서에 있어 그 시작은 마음을 내는 것이다. 아티샤 존자의 법맥을 이어 어머니의 공덕을 항시 염두하며 자타상호교환법을 수행하라. 사랑은 은혜를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 무시이래 끝이 없는 윤회에서 어머니의 태에 의지하여 내가 생함에 모든 중생이 나의 어머니가 아닌 이가 없었다는 생각을 지녀야 하리. 어찌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가. 어머니가 자식이 아플 때 약을 주고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듯 만물을 대하니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그 무엇일까.”
티베트불교 승려 2만 명. 37개국 불자와 관련인 1만5천여 명의 운집. 남인도 벨라쿠피 세라사원군에서 달라이라마(뗀진갸초, 79)의 <람림(보리도차제론)> 강설법회가 열렸다. 지난해 12월 25일부터 1월 3일까지 열흘간 개최된 이번 법회는, 2012년 남인도 문곳 대붕사원과 가덴사원에서의 람림법회에 이은 두 번째로, 쫑카빠 대사의 <보리도차제광론>을 저본으로 삼았다.
법회 기간 중에는 겔룩빠 내에서 심한 갈등을 빚어오고 있는 슉덴의 문제를 공시화 하는 출판기념회를 갖기도 했다. 슉덴은 겔룩의 호법신장으로 지난 5대 달라이라마 때부터 400년간 신앙되어 오다가 달라이라마의 인도 망명 이후 스승이셨던 6대 링린포체의 권고 이후 겔룩빠의 이단으로 전락했다. 이후 신앙의 자유를 핍박받는다는 근거로 슉덴은 달라이라마를 악마에 비유하면서 합성사진과 유언비어를 배포하는 등 반 티베트 불교적 행동을 일삼아 왔다. 달라이라마는 본인을 위협하는 존재는 중국이 아닌 슉덴이라고 12월 28일 출판을 기념한 자리에서 발언하기도 했다. 이어서 한때 겔룩의 전통을 이어 슉덴을 호법신장으로 여겨 왔던 달라이라마 본인의 책임이 이와 같은 슉덴사태의 책임이 크다며 해결 또한 본인의 역할임을 단언했다.
2012년 대붕사원에서 달라이라마 영접을 위해 공항으로 향하다 대형 트럭과 충돌해 고관절에 상해를 입고 회복중인 7대 링린포체는 목발을 짚고 법회에 참석하며 휠체어로 이동하는 열의를 보였다. 더불어 올해 12월 람림법회는 남인도 문곳에서 최종 마무리 될 것으로 확정되었으며, 이번 람림법회는 지난 1월 3일 관세음보살 관정과 별해탈계로서 성료했다.
<다음은 달라이라마의 법문 중에서>

한 때 나란다승원 터에 방문했을 당시, <현관장엄론>과 <입중론>을 송하는 내내 저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죽은 가르침을 살아 있는 가르침으로 되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이었습니다. 우리는 법을 들음에 유익함을 생각하며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물론 법을 설하는 스승 또한 설법의 여섯 가지 공덕을 헤아려 스스로를 조복 받고 제자와 마주해야 합니다. 붓다께서는 계정혜 삼학에 두루 정통한 스승이야말로 제자를 이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스승이 있어 명성이 매우 높아 섬기는 스승이 아닌 그 스승이 나를 정법으로 이끌어 주기에 합당한지를 의심해 봐야 합니다.
한 때 티베트의 유명한 법왕으로 소문난 자가 중국의 사원에 머물렀습니다. 많은 중국의 불제자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법왕은 부와 여자를 탐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소식이 인도에 망명한 달라이라마 저에게까지 보고가 되어 조치를 취할 것을 부탁받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망명한 상태인 저는 제자 스스로가 현명하게 스승을 살필 것이지 다른 3자가 관여하기엔 다른 큰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고 조언하였습니다. 스승은 제자를 점검해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제자 스스로도 스승을 점검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바른 법을 가지면 허물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한 과학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자신이 발견한 연구의 성과들이 타성에 젖어 한 방향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항시 주의한다는 말을 들고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공정한 마음,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붓다께서도 금을 연마하는 연금술사와 같이 붓다의 말씀이 참된 진리에 어긋남이 없는지를 반드시 살필 것을 타이른 바 있습니다. 공정한 견해를 지닌 이는 무엇이 참된 진리이고 참된 실상과 받는지를 살피고 빨리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현 티베트의 사태를 봅시다. 나라를 빼앗긴지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티베트망명정부는 중국이 그르다 혹은 티베트가 옳다는 편향된 견해에 치우침이 아닌 공정한 시각을 도출하기 위해 중도적 정책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견해를 가짐에 근거와 타당성이 과연 옳은가 그른가는 스스로가 사유할 몫입니다. 그 잣대는 스승에게 들은 바를 따르되 주변의 여론몰이와 어울려 묻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정한 시각으로 받아들여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람림의 서문에서 쫑카빠 대사께서는, ‘스승에 의지함이 무엇인가’ 그 조건을 본문에 앞서 강조하셨습니다. 수행에 임하는 이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모두 청정해야 합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성스러운 삼보에게 귀의를 올리며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까담에서 이어오는 소종수행에서와 같이 내가 누구와 있던 그 무리 가운데 가장 하등한 자이며 그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겸손한 마음을 근저에 둬야합니다.
평소 마음이 산란하고 집중이 쉽지 않다면 내가 숨을 쉼에 날숨이 어떻게 나가고 들숨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살펴보세요. 숨을 바라봄은 정혈맥의 금강승 수행을 임함의 기본입니다. 의식이 흔들림 없이 그대로 머물고 있다면 성과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삼보에 귀의하여 일체 중생을 향한 네 가지 무량심을 일으킵니다.
‘모든 것은 그 자성으로서 공하다’는 마음을 일으켜 존재를 바라보세요. 내가 보존으로 태어남에 무자성으로 태어난 그 자체를 공함에 안착시킵니다. 이것이 붓다가 지닌 지혜 의식의 씨앗입니다. 공성의 본연으로부터 허공의 연화좌에 안착하신 붓다를 관하여 시방으로 성문과 연각의 불보살께서 붓다의 말씀과 함께 한다고 여깁니다.
7세기 나란다승원의 한 학자의 저서를 보면 지구는 둥글며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반면 불교의 아비담마학에서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바세계가 사각이며 31개의 층으로 분류된다는 논의가 있습니다. 어느 것이 이치에 맞고 옳지 않음을 현대인들은 잘 압니다. 은하계를 거론하는 오늘날 우리는 생명 지닌 존재의 범주를 인간에만 국한시키지 않게 되었습니다.
쫑카빠 대사의 꿈에 아티샤 존자께서 모습을 보여 머리를 어루만져 주심에 지어진 것이 바로 ‘보리도차제의 기도문’입니다. 청정함에 머물러 삼보에 공양을 올림에 처음으로 <입보리행론>에 의지하십시오. 티베트의 구파인 닝마빠와 겔룩빠 그리고 까규빠의 공통은 금강승은 무상요가라는 것입니다. 쫑카빠 대사를 시조로 도솔천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간덴하겔마)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공성의 수승함을 일깨우신 용수보살과 미륵보살 그리고 무착보살로 이어져 오는 논의의 기반은 모두 람림 즉, 보리도차제에 두고 있습니다.
공성은 대상을 두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리심과 자비심은 내 마음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수행입니다. 탐구와 생각의 고찰은 매우 중요한 수행입니다. 신심과 믿음이 도움이 되고 필요한 것인지를 항시 상기해야 합니다. 내가 믿고 따르는 불교의 견해가 무엇인지 더불어 타 종교의 견해와 무엇이 공통되고 다르며 어떻게 모순이 되는가를 분석해 봐야 합니다. 때문에 스승에게 의지하는 예비수습이 관문이 됩니다. 일체 공덕의 근원처가 바로 이 자리입니다. 일곱 가지 인과법으로서 마음을 일으켰다면, <입보리행론>에서는 나와 남을 속히 구제하고자 하는 서원을 일으킨 자는 나와 남을 바꿔 보는 비밀 수행, 자타상호교환법을 행하라고 일컫습니다.
당신에게 은혜로움이란 무엇입니까? 배고픈 이가 따뜻한 밥 한 공기를 얻은 기쁨에 견주어 볼 수 있을까요. 정법의 길을 볼 수 있음에 이보다 큰 은혜가 있을까요. 타인의 행복을 원하는 것으로부터 붓다와 보살의 길로 향하는 티켓을 얻은 바와 같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나만의 행복을 바라왔습니다. <중관보만론>에서는, ‘중생을 위한 배와 다리가 되어서 마치 중생의 하인과 같이 머물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타인을 위함으로 나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다음 생에도 그리고 그 다음 생애에도 불법과 멀어지지 않고 항시 불법과 함께해서 불도 위에서 정진케 하기를 기도하는 이라면 스승의 존귀함을 알고 정도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나의 스승을 상기시켰을 때 눈물이 나고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믿음과 간절함이 일어나야 합니다.
베풂 그리고 받아들임을 의미하는 티베트불교의 똥렌수행은, 왼쪽 코에서 숨을 내쉴 때 중생의 안락을 염원하고 오른 쪽 코로 숨을 들이 마시며 중생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타 중생을 위하는 의계를 실천함에 삼보를 향한 귀의와 참회 그리고 마음을 굳건히 해야 할 것입니다. 행보살계를 통해 이생을 넘어 다음 생까지 일체 중생이 성불할 때까지 나의 발보리심이 후퇴하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