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수레가 부분의 집합체로 온전히 존재하듯이 ‘나’ 또한 오온의 가립에 의해 존재하네. 자력으로도 자성으로도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네. <입중론> 中에서
“마음의 과학, 불교. 21세기에 부합하는 보살심을 일깨우세요. 연민과 자비로 이 한 생을 살아도 모두와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현명한 불자는 압니다. 성내고 분노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78)는 미국에 이어 멕시코로 법문여행중이다. 마음과 생명연구소(Mind & Life)를 설립하여, 과학의 진보와 내적 가치의 소통의 장을 이어가고 있는 달라이라마는 합리주의적 불교를 ‘세속적 윤리’에 기반을 두어 설법하였다.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것, 동시에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보살의 길을 강조했다. 물질적 차원뿐만 아니라 의식의 차원을 넘어 감각적 경험에 단순히 반응하지 않는 그 이상의 복잡성을 아우르는 활동의 근저에는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한 진보의 역사가 있다. 모든 생명 지닌 존재가 동등하며 소중하다고 말하는 달라이라마. 고령의 노장이 전하는 평화와 윤리의 메시지는 오늘날 불교의 정수이며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의지함이 없이 실체로서 존재하는 ‘나’가 있다면,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따로 분리된, 독립된 관계여야 합니다. 불교는 인무아로서 독립된 ‘나’를 철저히 부정합니다. 붓다께서는 인아이건 무아이건 일체 고통의 원인이 되는 아집을 멸하게 하기 위해 부상법륜인 ‘무아無我’를 설하셨습니다. ‘무아’는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공성의 차제입니다. 불법은 파키스탄의 탁실라와 인도의 나란다승원에서 그 화려한 꽃을 피웠습니다. 나란다승원에서 배출한 17대 논사 가운데 용수보살은 공성의 견해를 다룬 다수의 논서를 남겼으며, 은희차제라고 하여 드러나지 않게 미륵보살과 무착보살을 통해 광대한 실천과 계보의 수행 체제가 담긴 법통을 이어 갔습니다. 티베트불교의 교학과 실천은 모두 논리와 검증에 의해서 확립된 것입니다. 진나와 법칭께서는 불교의 논리학을 나란다승원의 법통을 이어 근도과로서 성립하였습니다. 이렇게 불교는 지혜를 뒷받침으로 검증된 믿음을 신앙해야 합니다. 이 또한 근기와 성향이 다양해 대기설법으로 펼쳐졌으니 단순히 붓다의 말씀이라고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도록 항시 주의해야 합니다. 붓다의 최종 삼전법륜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해심밀경>입니다. 다시 말해, 불멸의 법문이라고 합니다. 무자성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근기를 염려하여 단견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 그리고 원성실성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중생이 지닌 지적 수준의 차별성을 존중하여 교학의 입장에서 지혜를 구별한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각기의 근기가 있습니다. 근기에 따라 존재함을 인정하여 모두가 이롭기를 존중해야 합니다. 환자의 증상에 따라 의사가 약을 처방하듯이 종교도 이와 같습니다. 불교적 지식으로 헤아린 논리와 철학들이 아무리 절대적이라고 자긍하여도 많은 영역에서 부합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입니다. 아무리 최고라고 하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종교로서 그들을 나누지 않으며 존중하도록 해야 합니다. 나와 같거나 다르다는 편견을 버리세요. 실질적으로 내 것이라는 집착, 미움에 기인한 것이라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이치와 논리로서 합리를 구하세요. 대승의 나란다 법통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금강승 수행이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왜 수승하고 뛰어난지를 이치와 논리로서 분석하여 수승한 그 이유를 밝혀야 합니다. 확신은 논리적 검증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언변이 뛰어난 이가 있어 그의 화술에 끌려 다니게 된다면 법도 비법도 구분하지 못한 채 귀중한 인간의 몸을 헛되이 쓰게 되고 말 것입니다. 단순히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거듭거듭 사유하여 확신을 일으키세요. 이를 바탕으로 체험하고 체득하여 자신의 삶의 중심 기둥으로 세워야 합니다. 이치로서 자타의 교의가 지닌 장단점을 파악하고, 외도와 내도의 차별성을 구별하며, 현교와 밀교를 차별하지 않고서는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종교는 근기와 성향에 따라 믿고 따르는 것이지 우월하거나 유일한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 종교의 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 우리는 서로가 지닌 문제점과 오류 그리고 모순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대화를 열어 갑니다. 이러한 이념적 충돌을 떠나 우리는 종교의 역할과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공통으로 탐구하고 토론하기 위해 존중을 기반으로 원탁에 둘러앉습니다. 우리 불자 역시도 붓다의 가르침을 동일한 하나의 목소리라고 고착화 시키지 말고 이치적으로 구별하여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타를 이루는 몸이 되도록 권고하신 붓다의 가르침은 한량없는 복덕임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붓다의 법은 사유를 통해서 성취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듣고 배우며, 끊임없이 치밀하게 사유하여 얻은 확신을 담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총체적인 사유와 분석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거듭해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에 걸맞은 불교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에 부합된 ‘신심’은 나란다승원의 법통의 계승을 이어가는데 21세기 불자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치열한 사유와 치밀한 분석으로 붓다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얻으세요. 나란다 출신의 스승들이 매우 명확하게 논서를 통해 다양한 각도로 논한 것은 외도와의 논쟁을 통해 이뤄진 성과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인명논리학입니다. 티베트불교의 법통은 이렇게 논박, 교리의 답변 그리고 논쟁의 타파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무조건 나열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철저한 논리적 검증으로 외도의 모순을 나열하여 명확하게 진리를 구하세요. 의심이 일어나면 주저하지 말고 이치적으로 밝혀 보세요.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며, 법에 의지하지 말고 말에 의지하며, 말에 의지하지 말고 내용에 의지해야 하니, 그 내용이 요의인지 불요의 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통해 얻어진 확신으로 다른 경서에서 생긴 의심과 의문 또한 바르게 끊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백송>에서, ‘선취를 이룬 증상생 혹은 해탈을 이룬 것에 거짓이 없다면 연기의 이치로서 진실된다고 파악이 된다면 그 가르침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업業을 정의하는 것은 일반적인 지각으로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현재 인식할 수 없는 다양한 과보를 미리 알 수 없기에 해탈을 이루는 가르침이 먼저 이치적으로 타당한가 그 근거를 살펴야 합니다. 산스크리트 논장의 내용이 300부가 넘는 것은 행복을 이루는 그 방법이 그만큼 다양한 이유입니다. 이생에 원만히 구족을 이루고 나아가 삼세의 해탈과 자신뿐만이 아닌 타인의 행복을 함께 구현하는 성불을 위함입니다. 70억 인구의 행복 성취는 세속적인 윤리와 이타심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나와 가족 그리고 사회에서 국가로 이어지는 깊은 연관성을 두고 보더라도, 한 나라의 평화와 주변 국가와의 안정이 모두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회와 국가는 반드시 행복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항상 분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나의 행복은 타인의 행복과 긴밀하게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입보리행론>에서, ‘우리의 한 몸 가운데 수족이 괴로우면, 내 몸과 마음 전체가 고통스럽듯이 타인의 아픔은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불교도는 종교와 비종교를 차별하지 말고, 이생과 내생을 인정하거나 하지 않거나 편을 나누지 않으며, 현대의 과학자들 보다 근본적 측면의 마음 분석을 통해 보다 정직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증명된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일시적 행복을 이루게 하는 원인이 있고, 궁극적 행복을 이루는 원인이 있어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지혜로운 분별로서 행복을 성취하는 원인의 복전을 가꾸세요. 용수보살께서는 연기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설일체유부와 경량부 그리고 유식과 중관에서도 모두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이생의 행복을 통해 성취를 구현하고 진여연기 사상을 통해 일체의 종지를 이루는 인과성의 연기법과, 눈앞의 인과에 몰두하여 결국 모든 악행으로 이어지는 가립성 연기법이 그것입니다. 세간에서 얻어지는 지식의 대부분은 물질적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인과와 진여에 대한 실상에 무지하여 결국 윤회를 초래합니다. 이생에 인간의 몸을 받음에 귀한 보물을 지닌 것과 같이 여기세요. 궁극의 행복을 찾아 길 위에 선 여러분께서 삶의 의미를 값지게 헤아리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