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일본 조동종과 밀교수행 교류 이번으로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0)의 스물한 번째 일본 방문이다. 일본불교의 대표 선종, 조동종 총본산이 자리한 요코하마현 총지사.持寺에서 달라이라마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조동종 청년회는 태조 형산소근(1264~1325) 선사의 원기遠忌 700주년을 기리며 달라이라마를 일본에 초청했다. 벚꽃이 만개해야 할 4월이지만 연일 비가 내리고 흐리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사흘이면 진다고 했던가. 달라이라마의 방일 열 사흘간 연분홍 벚꽃이 그 빛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일본 교도통신 기자에게 물었다. 달라이라마의 일본 방문이 지속적으로 성사되는 비결이 있다면? 기자는, “일본 정부로부터 순수한 종교적 행사라는 방문 목적을 인정받고 그에 준하는 행사를 열어왔다. 정부와 불교 종단 그리고 행사 주관 단체가 서로를 신임하고 그에 합당하게 활동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달라이라마가 한국에는 단 한 차례도 방문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의아스레 하며 적지 않게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달라이라마가 외국을 방문할 때 마다 ‘중국정부 반발할 듯’이라며 소신 없이 그저 편드는 기사를 쓰는 것이 달라이라마를 대하는 한국 언론의 실태다. 교도통신 기자의 의견과 같이 일본은 여느 국가와 사뭇 다른 달라이라마의 방문 분위기를 보였다. 유럽이나 미주에서 달라이라마 법회가 열릴 때처럼 ‘슉덴’ 단체의 반 달라이라마 시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치인과의 만남도 일체 드러나지 않고 비공개로 이뤄졌다. 대만과 중국 본토에서 천여 명의 불자들이 달라이라마 법문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를 찾았지만 법회 마지막 날까지 정중한 불교도의 자세를 취했다. 급기야 달라이라마의 출국 14일 도쿄 소재 호텔에서 단독 만남이 성사되었다. 한국불교와 일본 조동종과의 관계 역시 매우 우호적이다. 총지사는 대한불교조계종과 2011년도에 종단 교류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3.11 일본 대지진 당시의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합동 천도재를 열었고, 향후 한국과 일본의 양국 불교의 협력을 약속한 종단이다. 4월 2일 일본에 도착한 달라이라마는 삿포로 일정을 시작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대승불교 학자들을 비롯해 정신 분석가와 물리학자 그리고 학생들과 만나는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했다. 12일과 13일 쇼와여대에서 열린 법회는 서른아홉 개의 극장에서 동시 상영되기도 해 달라이라마에 대한 일본 대중의 관심을 짐작케 했다. 달라이라마는 도쿄의 마지막 공개 일정 전에 카나자와현에서 티베트 난민을 후원하고 있는 단체 부쇼카이(Busshokai)의 대모 ‘아마바바’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활동을 격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속열차 신칸센 편으로 11일 도쿄에 도착한 달라이라마는 점심 공양 시간 12시에 정확히 총지사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달라이라마가 일본의 쌀밥을 무척 즐긴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여담이다. 더불어 일본인들의 정확한 시간관념을 염두 하는 달라이라마이다. 총지사 본당에는 천 팔백여 명의 불자들이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 달라이라마는 입장을 환영하는 갈채 속에서 청중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성원에 답했다. 달라이라마는 그가 항시 강조해온 70억 인류의 차별 없는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불교적 수행론에 대해 ‘평화의 전언’을 주제로 설했다. 계행의 기반으로 한 사랑과 연민을 생활 속에서 신앙을 통해 실천하도록 하는 21세기 불교도의 자세를 강조했다. 과거 일본인들이 겪었던 격동의 시대, 그 회오리 속에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이 그야말로 일본불교 안에 오롯이 녹아 있음을 칭송했다. 달라이라마는 강연보다 청중과의 질의응답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내면의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유와 행복을 성취하고 유지시키기를 원하지만 특히 일본인들은 그들의 일상을 스스로 격리시키고 교감을 차단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항시 바쁘고 예민한 일본인들의 속마음은 알 수가 없다.”라며 뼈있는 지적으로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서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는 훈련을 하고 내면의 긍정을 발견하도록 하라. 오늘의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 영어를 배우고 경험을 확장시키는 기회를 만들어 보다 큰 세상을 만나는데 적극적으로 임할 것”을 당부했다. 달라이라마는 본인이 세계를 대표하는 불교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상식이 통하고 윤리가 보편화되는 세상이 실현되기 위해 반드시 불교가 선교되고 불교만이 신앙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발언했다. 유한한 인간 개개인의 삶이 공유해야 하는 공동의 업을 보다 선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생활을 살도록 실천하는 것, 현대 과학이 증명해 가는 진실 그리고 진리들이 삶속에서 이해되고 증명되도록 스스로가 시대와 통섭하는 것,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윤리가 보편적인 삶의 기반이 되도록 하는 것,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타인을 존중하며 유연한 동료 관계를 형성해 가도록 하는 것이 불교를 통한 그리고 불교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가치임을 설했다. 현대인들이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불교를 통한 자가 수행법에 대해, “샨티데바의 논서 『입보리행론』을 가까이 하고 수시로 독송하기를 권한다. 전부 읽고 사유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면 그 가운데 6장의 ‘인욕’ 품과 8장의 ‘선정’ 품을 읽고 사유하며 스스로를 점검한다면 잊고 있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깨알 같은 행복들과 만나는 기회로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다음 날 12일. 쇼와여대 히토미 기념강당에는 2천여 명이 넘는 청중이 달라이라마의 『반야심경』과 용수보살의 『수습차제론』 설법을 듣기 위해 모였다. 한국인 불자 200여 명과 몽골 러시아 중국 대만의 아시아 불교도들이 일본에 이틀간의 달라이라마 법회를 위해 일본에 모였다. 첫 날 법회를 열며 한국 불자들이 반야심경을 봉독한데 이어 중국 불자들이 반야심경을 봉독하는 장관이 연출됐다. 다음 날인 13일은 달라이라마의 일본 마지막 법회 일정으로 몽골 불자의 권청에 의해 관세음보살 관정 의식이 집도되었다. 만다라는 동쪽에 안착되었으며 이날 보살계를 받은 이들은 근본 스승으로 금강 부동불을 모시게 되었다. 오늘 법회가 열리는 곳이 여자 대학교의 기념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매우 흥미로운 생각을 했습니다. 불교의 수행도 가운데 ‘반야바라밀’을 ‘붓다를 낳는 어머니의 지혜’에 비유를 하지요. 그러한 의미에서 이곳 여자대학은 붓다의 딸을 양성하는 지혜의 전당과 같습니다. 붓다의 딸들은 어머니가 되고 또 자녀들 낳아 그 시대에 필요한 인물로 성장을 시키지요. 조건 없는 마음을 일으켜 오직 사랑과 연민 그리고 자비에 기반 해서만 말입니다. 제가 항시 강조하는 21세기 불자의 상이란, 마음교육을 제대로 가르치고 또 물려받아 실천하는 이들입니다. 석가모니 붓다의 삶 속에서 그토록 간절했던 진리에 대한 탐구와 체득하여 몸소 보이신 여실한 가르침은 장구한 25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는 감동이 되어 일깨웁니다. 우리는 이를 사성제, 삶을 대하는 네 가지의 고귀한 진리로서 표현합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음에 보고 느끼는 바의 원인을 알고 바른 방향의 길로 정진하는 삶을 살게 하는 뼈대가 됩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나’를 돌아봅니다. 일체는 찰나 생하고 동시에 멸하기 때문에 그 본질은 괴로움입니다. 때문에 무명이라고 하는 괴로움의 행상을 여실히 알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공성空性의 지혜’입니다. 우리의 태초는 무엇인가요? 바로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자비가 우리의 본체입니다. 동시에 사성제의 연기법으로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발견하고 느낍니다. 이 안에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오늘 법문의 주제인 반야심경 역시 ‘공성’을 집중으로 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공’은 사성제 가운데 멸성제를 위한 가르침입니다. 마음의 허물이 일시적인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객진에 의한 번뇌라고 하지요. 일체가 무자성이며 공조차도 결국에는 법성으로 되돌아갑니다. 인아에 실체가 없음을 보세요. 생명이 있는 대상에 붙여진 이름은 모두 오온의 인연 화합입니다. 인의 근거가 되는 오온조차도 무자성임을 볼 때 법무아를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여 논의하는 반야심경은 붓다의 궁극적인 견해인 ‘공’의 실체를 자각하기 위함입니다. 일체가 분별입니다. 일어나는 한 생각이 분별이지요. 이 분별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최근 인도의 한 물리학자가 2500년 전 용수보살이 논했던 ‘공’의 논리야말로 현대 과학의 한 분야인 양자물리학의 다른 이름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공의 논리로 세상을 보면 일체가 무상입니다. 의지하지 않고 자력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색과 분리되어 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를 일으키면 그것이 바로 윤회입니다. 업이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본래 미운 것 그릇된 것도 없습니다. 내가 지금 분별하는 그 무엇 혹은 대상을 통해 스스로의 자량 근기를 가늠해 보시지요. 티베트 밀교에서는 ‘정광명’의 발현을 강조합니다. 이는 범부의 마음을 제거하여 붓다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방법론은 밀교 수행으로서 보다 심층적으로 세밀화되는 차제를 보입니다. 반드시 공성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며 본존을 관하는 수행법으로서 근기에 준한 차제를 따라 정진해 갑니다. 수행을 통한 이익을 확실히 상기하되 지혜로서 미세한 무상을 관하고 점차 의심을 끊어갑니다. 자비 역시 하나의 마음 상태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치우친 연민 역시 자비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붓다의 딸들은 대자 대비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무상과 무아를 사유하기에 가능한 원력입니다. 붓다의 딸들은 고통의 원인이 되는 번뇌를 자처하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크나큰 연민 때문에 그들의 행복을 성취하도록 조력하기 위하여 본인이 고통을 자처합니다. 보리심을 일으킨 마음이 정광명이 되어 존재들이 지닌 심성을 허물이 없는 청정함으로 변화되도록 하는 것.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사유하고 삶으로 옮기는 일. 그 시작은 본래 청청한 그대로의 마음을 여실히 앎으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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