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스님법문
다시보기
“바른 신심을 일으켜 법을 나르는 수레로 삼아라”
몽골불자들의 만다라 공양 게송이 법당에 울려 퍼진다. 청중들은 이내 숙연해졌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79)는 1979년에 처음 몽골에 방문했던 당시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간덴포당(티베트 정교일치 체제로서 5대 달라이라마에 의해 확립, 14대 달라이라마에 의해 2011년 3월 공식 해체)을 회자했다. 이미 1959년도에 인도에 망명한 상태였던 달라이라마는 공산당 체제 하의 몽골에서 성사된 티베트 불교도와의 만남에서 특별했던 그 때의 감회에 젖었다. 만다라 공양을 올리는 내내 달라이라마의 전기를 읊는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고 달라이라마도 티베트의 상황에 대해 매우 슬퍼했던 그 날을 떠올렸다.
티베트와 몽골의 인연은 3대 달라이라마 소남갸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573년 몽골을 방문한 데붕의 사원장 소냠갸초는 황제 알탄 칸으로부터 바다와 같은 지혜를 지닌 스승이라는 의미가 담긴 달라이라마 칭호를 헌사 받았고 그 이후 오늘의 14대 달라이라마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오늘의 티베트 불교는 후대 달라이라마의 존속 여부와 관련한 여러 공방의 상황에 처해있다.
달라이라마는 13대 달라이라마(툽뗀갸초, 18 76~1933)께서 몽골에 방문하여 티베트 라싸로 가져온 낙타 10마리에 얽힌 추억담을 들려주었다. 달라이라마는 어린 시절 노부링카에서 낙타 타기를 즐겼다면서, 쌍봉낙타의 등에 올라타 뒤의 혹에 몸을 기대어 휴식을 취하기도 했던 추억담을 들려주며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지난 해 2014년도 8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개최 예정이던 칼라차크라 법회가 중국정부 시진핑 주석의 몽골 방문으로 급기야 취소되었다. 몽골 정부 총리는 올해 8월에는 반드시 달라이라마가 주관하는 칼라차크라 법회를 성사시키도록 하겠다고 대안을 내놓았고 달라이라마 역시 희망적 의사를 비쳤으나 신중히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12월 2~5일 4일간 티베트 망명정부가 수립된 인도 다람살라의 겔룩빠 산하 남걀사원 법당에서 몽골불자의 청으로 달라이라마의 법회가 열렸다. 총카파 대사의 <보리도차제광론(람림)>을 주제로 몽골 본토에서만 500여 명의 불자들이 몽골 항공 전세기로 다람살라에서 5시간 거리의 국제 공항 암리차르에 도착해 이번 법문에 동참했다.
더불어 총카파 대사의 최 상승 밀교 수행차제 집필 <구야삼마자> 600주년을 맞아 다람살라 소재 규또사원을 찾은 간덴트뤼빠(간덴사의 수장)가 이번 법회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15세기 티베트 불교의 개혁가로서 겔룩빠를 창시한 총카파 대사는 1409년에 간덴사원을 건립하였다. 1419년 총카파 대사의 열반 이후 그의 법제자이자 조카인 겐둔둡빠가 겔룩빠를 존속시킴에 간덴사원의 초대 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후대 소남갸초는 존경의 의미로 간덴의 초대 사원장 겐둔둡빠에게 1대 달라이라마의 호를 올렸고 본인은 3대 달라이라마가 되었다. 이후 달라이라마와 간덴트뤼빠는 겔룩빠의 양대 수장의 직무를 수임하게 되었다.
내년 달라이라마의 세수 80세를 기념하기 위해 인도 정부에서는 기념 다큐멘터리를 제작중이다. 그러한 가운데, 워싱턴포스트지는 특집으로 유명 몽골 가수의 달라이라마 만남 기행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 북인도 히말라야 산기슭은 이곳저곳이 분주한 풍경이다. 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 예정이던 노벨평화상 수장자 회담이 취소되고 이탈리아에서 12월 12일로 개최 일정이 변경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톨릭의 프란체스코 교황과의 회동이 크게 기대되었지만 교황청은 축하 서신만 전달할 뿐 달라이라마를 비롯하여 모든 역대 수상자와 만나지 않겠다고 발표해 큰 실망감을 샀다. 이어서 17일에는 인도 델리에서 러시아 불자를 위한 법회와 남인도 문곳 간덴장체사원에서 23일부터 일주일간 열린 <보리도차제론> 법회를 마지막으로 달라이라마의 2014년도 공식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달라이라마는 이번 몽골법회에서 스승과 제자의 법 인연을 크게 강조하였다. 내가 실천하는 법에 대한 믿음과 신앙 활동에 있어 바르고 합당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함을 법문의 주된 주제로 삼았다. 올해 <보리도차제광론> 법문은 수행의 도리에 대한 전도된 견해를 타파함에 대한 강설로서 마무리 하였고 내년에 같은 주제를 이어 진행한다.

설법을 시작하기에 앞서 항시 강조하는 바가 있습니다. 법에 대한 바른 동기를 세우는 것이 그것입니다. 법을 설하는 입장에서 스승은 청정한 마음을 먼저 내야 합니다. 동시에 법을 듣는 이들도 바른 진여의 실상을 보는 지혜를 증장시킴에 무상의 뿌리를 끊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를 세워야 합니다. 중생의 죄악은 붓다의 손으로 씻겨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번뇌를 일으키는 법집과 아집을 무아의 지혜로서 끊을 때 비로소 번뇌는 멸합니다.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듣는 것이 가피고 또한 복이 될 것이라고 간과하지 마세요. 문사수의 삼학 수행에 임함에 있어 불교의 근본 자량을 닦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할 것이며 동시에 바른 불제자의 행으로 스스로의 근기를 증장시키는 과정의 일부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간절함을 떠올려 봅니다. 해탈을 원하는 이들의 귀의처인 불법승 삼보는 불행을 일으키는 원인을 알아 이를 제거하는 길을 향하는데 힘이 되는 법성을 일깨웁니다. 이는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귀의해야 할 의지의 근거이자 취후의 미세한 소지장마저도 멸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됩니다.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 그리고 승가를 떠올렸을 때 눈물이 나고 털이 곤두설 정도의 간절한 환희심이 여러분의 가슴가슴 마다 피어나고 있는가를 자문해 봅시다. 그리고 근본 스승이신 붓다와 미륵보살과 문수보살 그리고 용수보살과 무착보살에게 예경을 올립니다.
수행으로서 깨달음으로 나아감에 그에 준한 단계가 있습니다. 광대한 차제와 심오한 사상을 전승하신 아띠샤 뒤밤까라께서 저술하신 <보리도등론>은 총카파 대사께서 <보리도차제론>을 저술하심에 의지한 교전입니다. 총카파 대사께서 티베트에서 선지식으로 추앙받게 된 것은 연기법의 가르침에 있어 붓다의 경을 바탕으로 그 심오함과 광대함을 치밀하게 논한 까닭입니다. 까담의 수행차제학파에 속하는 가르침으로 총카파 대사께서는 상근기로 향하는 수행지침의 논서 <보리도차제론>을 저술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중관과 반야부의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그 정수만을 다지도록 한 의도가 담긴 것이 바로 <보리도차제광론>입니다. 인연을 맺은 이들 모두가 불지에 이르는 길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몽골에는 티베트의 토착신앙
교와 같은 샤머니즘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몽골인들의 정체성에 깊이 뿌리박힌 독특한 민족종교의 색채로 국민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종교의 철학적 관점으로 사상과 교리의 측면에서 이를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불교는 그 사상의 시작에 있어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신앙 활동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종교를 10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교들 속에서 불교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지만 공통적으로 그들과 같이 사랑과 자비를 믿음의 중심축으로 삼습니다.
불교는 인과법의 도리를 사상과 교리의 뼈대로 삼습니다. 이는 원인을 지음으로 낳은 결과로서 대가를 받는다는 원리입니다. 때문에 시작을 알 수 없는 이래로 하여금 ‘나’의 근원은 찾을 수 없습니다. 단지 인과 하는 주체로서의 ‘나’일 뿐입니다. 그 어디에도 ‘나’라고 지목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습니다. 각각의 오온이 어우러져 지금의 ‘나’가 된 것입니다. 다람살라에서의 법회를 마무리 하고 몽골의 집으로 되돌아가면 이웃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진지하게 ‘나’에 관한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인도에 석가모니 붓다께서 오신 지 2천 5백여 년이 흘렀고, 나란다 승원의 역사는 천년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붓다의 가르침이 온전히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은 붓다의 설법을 보존하고 전래하는데 평생을 바친 논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불교란 무엇인가에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원인이 되는 이유에 대한 추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유란 합당한 근거이며 추론이란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한 증명입니다.
숭배와 같은 신앙은 불안과 공포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인간의 삶이라고 하는 태어나 늙어가며 병들어 최종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유한함 속에서의 무상한 인간 그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그 누구도 초인적 존재의 노예가 될 일이 없으며 분노를 살 이유 또한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삶에서 평등심을 유지하며 현명하게 살 수 있는 길의 해답이 바로 불교입니다.
5대 달라이라마 당시 대붕사원의 대 학승으로서 몽골에 법을 전한 제춘탐빠(jetsun dhampa)의 9대 환생자이신 깔까제춘탐빠 린포체의 열반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몽골의 티베트 불교도들은 그 뒤를 잇는 10대 환생자를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대해 달라이라마인 저에게 진중한 자문을 구해왔습니다. 바른 불법을 전승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함에 걸맞은 수승한 스승을 찾는데 함께 힘을 기울여 보고자 합니다.
항시 강조해 왔듯이 올바른 스승은 설법으로써 스스로의 안락을 삼아야 합니다. 불법 역시 강요로서 설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반드시 청하는 이가 있을 때 그에 맞는 설법을 해야 합니다. 신심을 일으키세요. 믿음이야말로 최상의 공덕이며 법을 나르는 수레입니다. 스승의 공덕을 생각해 보세요. 마치 붓다를 반기듯이 스승을 의지하며 보리의 자량을 성숙시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가행으로서 항시 선지식을 가까이 하며 성취하신 존귀한 스승을 따르도록 하십시오. 스승을 향한 최상의 공양은 제자의 수행 정진력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