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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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그 무엇에 관하여
느닷없이 당신의 행복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머뭇거림 없이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까.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가족들과 대면했을 때 온정의 눈길로 나의 배우자 그리고 아이들과 충분한 교감을 나누었던가.

달라이라마는 말한다. “70억 인류 가운데 나 역시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로 하여금 행복을
실감케 한다.”고. 그렇다. 바르게 불교를 신앙하는 이들은 안다. 인간의 몸을 받기가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가를. 오탁악세로 표현되는 현세의 나를 둘러싼 세상의 부조리와 갈등 속에서 인간과 인간이라고 하는 독립된 개체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만나 얼마나 소중한 가치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다시금 일깨우는 법문이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렸다.

몽골 칼라차크라 법회 일정의 취소 이후 8월 22일 독일 함부르크에 입국한 달라이라마는 23일부터 26일까지 4일간 세속적 윤리에 근거한 인간 삶의 가치를 중심으로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과 <37보리도 차제>를 설법했다. 그리고 27일에는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 롭상상게 박사와 외무성 디끼췌양 장관이 대동하여 독일 주재 중국 지식인들과 ‘새로운 시작의 발견’을 주제로 비공개 회담을 열었다. 불법승 삼보가 조성된 사찰 법문에 국한됨 없이 대중문화와 교감하는 극장에 7천여 명에 달하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였다. 대중들과의 만남에 흔쾌히 들어서는 여든의 노장의 경쾌한 행보는, 수천 년간 지속된 불교 지식이 오늘날 인류의 보편적인 지혜로 공감화 되는데 기여하는 바의 공로를 아낌없는 갈채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27일 독일 일간지 ‘디벨트’지와의 인터뷰에서 후대 달라이라마 선정에 관한 질문을 받은 달라이라마는, “민주주의 망명정부의 완전한 수립을 위해 달라이라마 제도가 필요악이 될 경우와, 후대 달라이라마에 관한 중국정부의 비인도적 개입을 염려해 이번 14대를 끝으로 달라이라마 환생을 끝낼 수도 있다.”라고 답해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를 잘못 해석한 한국 언론은 9월 9일 속보를 시작으로 마치 ‘14대 달라이라마 본인을 마지막으로 티베트 달라이라마 환생제도는 더 이상 없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하여 큰 혼란을 야기했다. 달라이라마의 후대 선정 여부는 그의 수세 90세에 티베트 망명정부와 국민의 뜻을 따라 결정될 것이다. 아직 달라이라마 대는 끊기지 않았다.

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은 바로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관용이란 무엇인가를 삶 속의 체험으로서 체득한 바 그 지혜로서 가족을 보살피셨지요. 반면 오늘날 풍요로운 물질문명의 시대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대다수의 문제들은 사실상 정신적 인성적 교육 여건의 부재를 아프게 드러냅니다. 그 현상을 나름 극복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큰 비용을 들여 특별한 교육법을 쓰려 합니다만 사실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보이기만 합니다.

원인도 해결책도 모두가 가족 안의 관계에 있지 따로 그 어디에서 구하여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로부터 해결책을 도출함에 있어 옳고 그름의 분별과 긍정 혹은 부정의 극단적 선택이 한 측면의 일방적 사고로 결론을 내리기가 얼마나 모호한가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에 있어 근본 제공은 가족 관계에서 기인한다는 것에 주목하고 당신의 가족을 대하는 자세를 잘 관찰해 보고 개선에 노력하는 것이 엉킨 실타래를 푸는 가장 확실한 대안입니다.

사실 당신의 자녀들의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일상의 화두로 삼을 만한 주제를 저는 콕 집어 제시할 수 없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연민심과 이를 발전시킨 자비심을 일깨우는 명상 수행법을 지도하고 싶어 하는 바람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명상이란 그저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생각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생각을 나누고 대화하며 자신의 전문
영역이 지닌 한계를 확장시키는 조화의 장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저 또한 잘 모릅니다. 첫 번째로 저는 출가 비구이기에 그에 대한 경험적 지식이 미약합니다. 그나마 조언을 한다면 각자 다양한 아이들의 성장 환경과 교육 여건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진지하게 자비와 사랑을 자녀에게 타이르고 싶다면 옆에 사탕 과자를 조금 준비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양자 간의 대화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불과 며칠 후면 나는 인도로 되돌아갑니다. 지금 해결을 구하지 못한 당신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지금 노력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오늘의 심각한 문제를 잊고 같은 문제를 되풀이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의 느낌표를 가족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기를 권합니다.

저는 소위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하는 이들과 정치인 혹은 기업가를 비롯해 종교계의 지도자를 만나더라도 항시 일관되게 나와 같은 동등한 인간적 관계의 동료로서 그들과 마주합니다. 제가 달라이라마의 호칭을 지닌 여든의 티베트인 불교 승려인 바와 같이 그들은 각자 나름의 수식어로 존재성을 해석할 뿐 우리 모두는 행복을 원하고 그 행복을 성취하고 누리기 위한 욕망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현대 과학자들과 교육자들의 연구 과제로 마음 수련이 얼마나 실제 생활에 효과가 있는가를 단계별 혈액검사를 통해 실험한 사례가 있습니다. 점차적으로 시간의 간격을 두어 신경이 안정되고 스트레스가 감소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총 3주간 진행된 이 실험 이후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급우간의 관계가 눈에 띄게 개선되는 효과를 증명하였습니다. 관용과 친절의 효과라 함은 근본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제공합니다. 오늘날 인간에게 행복한 미래라고 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경제성장과 환경적 여건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는 나의 이웃 나와 관계한 타인과의 영향을 주고받는 이치와 같습니다.

물질적으로 성장하면서 우리는 정신과 건강의 영역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달라이라마라고 하여 특별한 음식을 섭취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느 종교 수행자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또한 그것을 유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충분한 수면과 명상 그리고 오후불식이 그 비결입니다. 나는 이른 아침 3시에 기상하기 때문에 5시 30분경에 아침식사를 합니다. 12시에는 과식에 가까운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해외 순방과 법문 당시 호텔에서의 조식 서비스는 시차로 인해 상당 부분 나를 곤경에 처하게 하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이 신경 써 관리하는 건강에 대한 관심은, 첫 번째로 마음가짐의 자세가 중심축이 되며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음이 유지되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때문에 저는 자신합니다.
‘스스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자문은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을 표현하며 나누고 있는가’라는 측면의 마음 자세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기 쉬운 가까운 예로 아이의 긍정적인 마음을 성장시키는 관건은 고가의 화려한 침대와 장난감이 아니라 어머니의 따스한 품에서 성장 가능하게 한다는 것에 의해 좌우된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인간을 다시 정의 내리고자 합니다. 인간이란 개개인의 조화입니다. 이미 함부르크 소재 학교에서 교육학자들은 이러한 측면의 세속적 윤리를 시범 교육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부디 눈뜬 지식인들의 선도 하에 윤리적인 측면에서 이를 반영한 학교 교육이 편성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또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전 지구의 모든 학교 교육으로 확대될 것 또한 긍정적으로 전망해 봅니다.

장구한 인간의 역사에서 무상을 봅니다. 내가 경험한 유일한 공포를 회자한다면 오직 하나, 1959년 3월, 티베트로부터 탈출해 인도로 향하는 망명길의 여정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는 피를 부르는 전쟁의 주도 국가였습니다. 지금은 어떠합니까. 유럽연합(EU)으로 동맹을 맺어 나라와 나라간의 경계는 상당부분 허물어졌습니다. 그 관계가 조화롭도록 가능케 한 뼈대가 바로 세속적 윤리입니다. 이는 일방적인 설교에 의해 맺어지는 것이 아닌 교육과 이해로서 일반화 대중화되는 것입니다. 이미 폭력과 살인이 심각화 된 상황에서는 벌어진 사태를 중단하기가 어려워지고 통제 또한 불가능해집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세계무역센터 폭발테러 당시, 나는 애도문을 통해 전 부시대통령에게 비폭력 대응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단언컨대 더 이상의 폭력을 방지하는 해결법이니까요. 서원하건데 21세기는 대화의 시대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사를 대함에 이타적 동기로서 사유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전 지구의 각계각층에서 호소하고 울부짖는 ‘평화’란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화를 성취하고 건설하여 영위하기 위해 그에 마땅한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옮기고 공유해야 합니다.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과 꾸준히 대화하고 인간은 스스로 자력에 근거해 자신이 처한 문제를 개선하도록 시도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 중심에는 인내와 관용 그리고 용서가 기반이 되어야 하며 자신을 그러한 방향으로 훈련시키는 교육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직접 사람들과 만나고 마주 바라보는 시간을 할애하는 것 역시 작은 예로서의 평화를 구현하는 촉매제가 됩니다.

순간에서 현재를 자각하여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순간의 찰나를 인식할 때 이미 그 절반은 과거의 시간이며 나머지는 도래하지 않는 미래입니다. 현재는 그 사이에서 결합의 연결체입니다. 일체의 공성에 대한 이해를 증장시키고 열반과 깨달음에 대한 내면의 확신을 하는 것은 자기 개발의 과제입니다. 이러한 수행에서 보리심은 항시 근저에 둬야 하는 자양분입니다. 말로만 하는 수행은 그저 읊조림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스승이란 석가모니 붓다의 경율론을 통해 깨우친 수승한 지식을 겸비하여 제자를 이끌어야 하며 실제와 융화하는 가르침을 전수함에 진지하고 진실된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그에 준하지 못하여 수행의 성과를 증득하지 못하고 공성 또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면 그가 아무리 세간에서 큰 스승으로 존경받고 그의 수하에 많은 제자들이 주석한다 하더라도 지성인이 아닌 그저 욕망의 바람에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중생 집단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 티베트 불교 겔룩빠 내의 어둠으로 비춰지고 있는 도겔슉덴 단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불법을 바르게 사유하여 실천하는 것은 21세기 불자의 매우 중요한 자세입니다.

마음을 일으켜 자비로서 보리심을 발아하고 의식으로서 발현시켜 수행하는 차제를 다룬 <입보리행론> 회향품에는 저의 말과 몸과 마음을 헌신하여 기도하는 구절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달라이라마라고 일컫는 저를 향한 여러분의 기대에 부흥하는 답이 될 것입니다.

‘허공계가 다 하고
마지막으로 단 한 명의 중생이 남을 때까지

저는 이 세상에 머물러
중생의 고통을 멸하는 자로 남겠습니다.’
‘For as long as space endures
And for as long as living beings remain,
Until then may I too abide
To dispel the misery of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