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스님법문
다시보기
연기의 섭리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종교는 분명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종교가 바르지 않은 방식으로 악용될 때는 갈등과 분쟁을 야기하는 근원이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처한 보편적인 문제들의 해결 잣대로 내가 신앙하는 종교의 말씀만을 고집하며 답을 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가 발생시킨 문제들이 신의 어명이라거나 심지어 신을 통해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지의 오류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합니다. 시리아의 난민들이 유럽의 지중해역으로 목숨을 걸고 몰려듭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느닷없는 폭탄 테러가 일어나 무고한 생명이 운명을 달리 하였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급기야 프랑스와 러시아는 IS의 심장부라 일컫는 시리아 락까에 보복 공습을 자행하였고 결국 무고한 민간인 사상자를 야기하였습니다.
이러한 인명 학살이 자행되고 인류의 문화유산이 파괴되는 과정 속에서 그 어느 것도 해결된 바가 없습니다. 점차 반 이슬람 감정이 확산되는가 하면 심지어 행위에 대한 목적의 참된 의미 또한 상실했습니다. 오늘의 참극에 대한 일체의 책임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시대의 강자가 지닌 편향된 무력과 종교의 탈을 쓰고 저지른 이 모든 죄악의 충돌들은 고스란히 우리 인간들이 짊어 져야하는 공공의 업이 되었습니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0)는 이 시대의 불교도들에게 항시 강조해 왔다. “연기의 지혜를 기반으로 비폭력을 실천하라.” 다시 말해 불교는 보편성의 가치에 충실한 합리화를 추구해야 한다. 이를 두고 민주주의와 불교는 그 목적에서 방향이 같음을 수차례 비유하였다. 인류의 참된 조화가 실현되기 위해 바르게 불교를 믿고 따르는 불교도들이 앞장서 종교를 넘어서는 현세적이고 세속적인 윤리의 가치가 보편적인 사유의 기반이 되도록 기여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에 대한 개념은 후대 달라이라마의 환생 여부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항시 거론되는 환생에 관한 달라이라마 본인의 입장은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책무에서 퇴임하면서 선명해졌다. 여성이 지닌 특유의 관용과 포용이 이 시대에 각별히 요구된다는 발상에 비추어 후대 여성 달라이라마 환생의 필요 가능성이 흥미를 끄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본인을 끝으로 후대 달라이라마 옹립은 없을 것을 제안한 것 또한 티베트 망명정부의 민주주의화를 위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티베트불교의 환생 방식 가운데 하나인 ‘마덴뚤꾸’ 방식을 따라 달라이라마의 입적 이전에 후대 달라이라마를 선정할 가능성도 비추었다. 확실한 것은 달라이라마의 존속은 결국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티베트인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티베트불교는 빠알리 경장이 아닌 산스크리트어 전통을 이었습니다. 내용상으로 금강승 수행에 대한 차이를 보이지만 석가모니 붓다께서 설하신 근본 사상으로써 다름이 없습니다. 이는 수행의 단계에서 지와 관의 형태로 통합됩니다. 그 때에 우리는 ‘나’의 거친 의식과 미세한 의식을 점검하고 길들일 수 있습니다. 미세한 의식은 극미한 의식으로 점차 세분화되어집니다.
우리는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가 윤회를 한다고 믿습니다. 이는 인과의 섭리입니다. 불교의 인명학 분야에서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관심을 가지고 의식의 상속하는 흐름을 집중적으로 논의해 왔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란 정진하는 도의 터전이라 정의하게 되었고 불교를 일컬어 마음공부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스승의 장수를 기원하는 것은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의 크나큰 바람일 것입니다. 근본 스승이신 석가모니 붓다께서 인간 세에 나신 지도 2600년이 흘렀습니다. 티베트에 나란다의 불법이 전승된 이후 100부에 달하는 붓다의 근본 경과 300부에 달하는 논서가 역경이 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티베트불교 학제에서 경·율·론 삼장을 수학하는데 출가 승려는 최소한 20년 이상을 정진해야 합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고 따르지만 일상에서 크게 착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는 결코 붓다께서 대신 씻겨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인이 있기에 발생하는 결과임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며 삶에서 일치시키는 불교도가 되십시오. 공덕이나 가피 또한 붓다께서 직접 손으로 건네주는 선물이 아닙니다.
모두가 행복을 구하지만 어떻게 해야 과연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지 그 원인을 직시해 살피는 훈련이 마음공부입니다. 지식적으로 알아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저 입가에서 맴도는 행복을 누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무지 속에서 한 생을 마감하고 마는 것입니다.
바르게 삶을 살아가는 것과 더불어 스스로 거짓이 없는 일생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올곧게 알고 사유해야 합니다. 나로부터 형성되는 타인과의 관계 형성 역시 같은 논리입니다. 스스로에게 선한 의지로서 마음을 다스리는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무엇이 당신을 어리석음에 휩싸이게 만들까요. 지금 이 순간 내 눈에 보이는 참된 실상을 헤아리지 못하면 망상으로 전도되고 맙니다. 때문에 인간은 평생 동안 모순과 착각 속에 집착만을 일삼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 남긴 체 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내가 화를 내는 대상이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언어와 몸으로 수행을 한다고 부산거리지만 정작 실제 상황이 닥치면 훈련을 기억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맙니다.
오늘 티베트 사회의 다수가 불교를 신앙합니다. 이 불교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세습화된 불교의 신앙 형태입니다. 무엇이 과연 붓다의 순수한 말씀인지를 바르게 아는 이들이 몇이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21세기에 부합하는 불교도가 되라고 연신 당부를 하지만 여전히 맹목적인 신심으로 수행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진실한 불교도라면 붓다의 가르침이 이치에 맞는지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철저한 공성의 관점으로 수행에 기반하여 의심을 해 봐야 합니다.
역대 티베트의 논사들이 논서의 말머리에 항시 강조해 온 원칙이 있습니다. ‘어떠한 목적으로 본론의 핵심과 연관을 지어 목적과 합당하게 중생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헤아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목적과 본론의 핵심은 분별과 분석에 의거하여 오류가 없는가를 분석해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께 한 가지 권유를 하고자 합니다. 불교의 관점으로 마음을 헤아리는 방식을 훈련하였다면 거기서 불교가 지닌 특정 언어의 색을 보편화하여 타인과 소통해 보십시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충돌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붓다의 말씀이 사회의 통념에 한 치의 거스름이 없는가. 세상을 사유하는 방식에 불교가 과연 조언을 할 수 있는가. 인간의 삶이 불교의 사유 방식으로 진정한 인류애가 발전하는 데 풍요롭게 공유될 수 있는가.

인도 다람살라에서 가연숙(보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