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연합법회 8천명 동참 열기
한국을 비롯해서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불자들이 다람살라에 모였다. 동북아 그리고 동남아시아 불자들의 요청으로 매년 열리고 있는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0)의 법회. 올해의 가을법회는 연합으로 개최 되었다. 해마다 11월을 기대하던 한국인 법회였으나 이번에는 9월의 동남아시아 법회 일정에 통합되어 7~10일까지 4일간 열렸다. 총 8천명의 아시아 불자들이 동참한 이번 법회는 각국의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다양한 주제로 나흘간의 흥겨운 법회를 이어갔다. 작년 한국인 법회 때와 같은 주제가 이번에도 이어졌다. 왕에게 들려주는 보배로운 논서 <중관보만론>은 궁극적인 행복을 성취하는 길을 위한 안내서이다. 어떠한 수행법으로 일체 종지인 붓다를 증득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중론>이 공성의 지혜만을 중점으로 논하였다면 이 <중관보만론>은 보다 폭넓게 공성의 견해를 아우르고 있다. 싱가포르 불자들의 법문 주제로 4년간 일관되게 진행해온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은 10장 회향품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했다. 추가 주제로 까말라실라의 <수습차제론>을 법문한 달라이라마는 수행의 근기와 부합되는 단계적 수행의 중요성을 당부했다. 바야흐로 9월부터 11월까지는 다람살라에서 개최하는 아시안 법회의 황금기다. 그러나 10월로 예정된 대만 법회, 12월에 열릴 것으로 기대하던 러시아 법회와 몽골 법회가 모두 취소되었다. 내년 1월로 기획된 바 있는 보드가야 칼라차크라 법회 역시 내후년으로 연기가 되었다. 12월은 남인도 훈수르 소재 규메사원에서 구야삼마자 법회를 시작으로, 벨라쿠피 소재 따시룬뽀 사원의 개원식과 함께 총카파 대사의 논서 <깨달음에 이르는 길(람림)>을 최종 마무리한다. 이번 법회 일정에 맞춰 다람살라를 찾은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회(공동대표 금강스님)는 향후 2년 안에 달라이라마를 한국에 모실 것을 자신했다. 달라이라마는 “한국의 정치 외교적 상황과 무역 관계상 사실 본인의 방한이 쉽지 않을 것을 안다”며, 한국의 불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국인법회를 주관하는 진옥스님(경주 동국대 티벳 대장경 역경원장)은 지난 해 달라이라마로부터 받은 티베트어 저본의 <불교과학> 한역 경과를 보고했다. 달라이라마는 이번 아시아 연합 법회를 마무리하고 12일 첫 비행기로 영국으로 떠났다. 중국 주석 시진핑의 영국 방문을 앞두고 이번 달라이라마의 앞선 방문에 한국을 비롯한 외신은 민감해 했다. 달라이라마의 영국 일정은 캠브리지 대학을 방문하고 런던에서 법회를 연다는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신의 이러한 술렁임은 달라이라마가 국제 무역 관계에 부정적 파장을 일으킨다는 여론이 전재되어 있음을 실감케 하는 사례다. 아이러니한 것은 시진핑 주석의 미국 방문 직후 10월 중순경에 달라이라마는 올해 ‘자유의 매달’을 수상하기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로 향한다는 것이다. 영국이거나 미국이거나 이 둘의 만남은 그저 엇갈릴 뿐이다. 달라이라마의 법제자 로버트서먼(작가이자 할리우드 배우 우마서먼의 아버지, 74)은 제 3국에서 달라이라마와 시진핑의 티베트를 주제로 한 만남을 주선할 필요를 역설하기도 했다.
법을 만나는 인연
티베트의 역경사는 사전을 찾지 않습니다. 빠알리 경과 논서를 번역할 때 역경사는 스스로 문사수 삼학의 정진을 통해 경율론을 완전히 이해한 후에 비로소 역경에 임하였습니다. 날란다 승원에서 전래된 논장의 가르침을 해석함에 티베트불교가 가장 수승하게 역경 분야의 독보적인 완성도를 자부하게 된 것은 대대로 내려온 역경사의 철칙이 되었습니다. 오로지 일체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신 석가모니 붓다. 근거와 이치에 합당하게 실상을 논하시고 진리의 길을 보이신 분. 붓다는 그야말로 정법을 구하는 중생의 영원한 친구입니다. 해탈을 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공성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상호 의존하는 연기를 설하신 붓다에 귀의해야 하는 근거가 바로 그것입니다. 불법과의 만남에는 인연이 따로 있습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에게 붓다께서 보이신 참 실상을 강제로 설교하며 주입하려 하지 마십시오. 적절한 때에 당사자의 필요에 의해서나 주변의 지인을 통한 권고에 의해 적절히 부합된 인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법에 준하는 근기의 그릇이 현실적으로나 합리적으로 통할 때 수행의 길은 희열로 충만해집니다. 먼저 윤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사유하여 복덕이 아닌 것을 끓으세요. 나라고 하는 집착하는 아집을 끊음에 보리심을 바탕으로 자량을 구족하고 삿된 것을 갈마하며 위없는 붓다의 경지로 향해 갑니다. 스승의 법을 듣고, 실상을 바로 보는 지혜로서 사유하여, 바른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수행의 기본입니다.
지혜 없이 성불할 수 있을까
티베트의 법왕 티송데첸 왕정 당시 마하연 선사와 날란다 승원의 대학승 까말라실라는 지혜와 선정을 통한 증득의 관건을 논쟁하였습니다. 집중적인 명상(사마타, 지) 만으로 수행이 완벽해질 수 있는가. 까말라실라는 명상을 관찰(위빠사나, 관)함이 없이는 과위의 정진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논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습차제론>으로 집대성 되었습니다. 수행의 차제에는 하 중 상에 해당하는 근기가 있습니다. 공성의 진리란 과연 무엇인가를 체득할 수 있도록 분류한 것입니다. 저는 이 논서를 티베트의 캄 지역 삼예사원 출신의 한 승려로부터 전승 받았습니다. 일체 실상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 일어납니다. 영원불멸의 주체가 없음을 극명히 해야 합니다. 찰나 변화하는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의한 것이 명백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결과에 조건이 되는 불행과 행복의 원인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항상 행복과 평온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행복의 원인이 되는 것을 등한시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과 같이 편 가림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마음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은 과연 어떠한 연유 때문일까요.
‘나’의 마음
마음을 지닌 생명체는 예외 없이 불행을 원치 않고 행복을 원합니다. 행복이란 ‘나’라는 마음이 원하는 지극히 본능적인 궁극의 그 무엇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인간이기에 예외가 없이 겪어야 하는 생로병사에서 인간의 사고 능력은 일시적으로라도 고통을 겪지 않고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가를 고민합니다. 가치적인 측면에서나 방법적인 면에 있어서 인간의 행복 추구는 인류사의 진보를 통해 진화해 왔습니다. 그러함과 동시에 마음의 귀의처를 만들게 되었지요. 나의 마음이 의지하는 바는 어디입니까. 인간의 지성은 내가 처한 고통을 위로 받고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을 만들어 내고 철학적으로 사유하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문명에 기반하여 전지전능한 존재를 파생시키고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영원불멸한 지구의 창조주를 고정화시키게 되었습니다. 결국 신을 믿는가와 인과를 믿는가에 따라 종교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되었습니다. 붓다께서 불법을 설하실 당시 인도의 보편적 사상은 힌두교였습니다. 이 힌두교에서는 바라문을 중심으로 베다를 신봉하고 제사를 지냈지만 보편적 이념은 자비와 사랑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창조주의 사상은 오늘날 인류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은 조물주의 근원이야말로 ‘사랑’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인류가 신앙하는 모든 종교가 지닌 근본이념으로 생명 지닌 모든 존재가 지향함에 한 치의 차별이 없습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사랑을 어떻게 증명하고 있을까요. 아이가 어머니의 보호 아래 뱃속에서 아홉 달 동안 보살핌을 받는 동안 어머니의 감정이 아이에게 직접 연결된다는 과학적 연구 사례가 발표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온기와 감정 이입은 아이의 뇌 사고 영역을 확장시킨다는 분석이었습니다. 모유를 충분히 먹고 성장한 아이들은 그러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보다 선한 감정 상태를 지속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어머니의 사랑에 비추어서 사랑이 지닌 무궁무진한 힘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