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가 선재에게 일컫기를 장애의 구름에서 벗어난 해와 같은 문수보살의 지혜 일체의 실상 헤아리는 법을 깨우치네 윤회의 무지 그 고통 속 중생 위해 외자식을 아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설하신 말씀 번뇌의 숙업 깨워 업의 사슬 풀어 주시니 고통의 근원 끊는 지혜의 칼 지니신 분이시여 본래 청정한 공덕으로 장엄하옵니다. -문수보살 찬탄기도(강로마)-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0)는 청소년법회와 인도불교도의 권청으로 열린 다람살라 법회를 마무리한 다음 날 6월 10일 미국 일정에 올랐다. 1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민주주의 국가기금회담(NED) 후 백악관 맵룹에서 오바마대통령과 회동한 달라이라마는 인권과 기후 변화를 포함한 공통의 관심사를 논의했다. 이날 민주주의 국가기금회는 중국정부에 의해 정치범으로 13년간 투옥되어 끝내 2015년 사망한 뗀진델렉 린포체를 추모하며 그의 영정에 민주주의 메달을 헌정했다. 그는 저지르지 않은 범죄에 사형을 선고받고 비공개로 화장을 당해야했으며 심지어 재마저 압수당했다. 한 티베트 승려의 비극적 죽음은 현 중국정부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낸다며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지속적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을 천명했다. 달라이라마의 오랜 벗이자 미하원 민주당 지도자인 낸시펠로시는, “달라이라마의 행보야말로 인간이 지닌 부정적인 태도를 일깨워 자비의 방식을 채택하도록 격려하고 있다.”는 인사를 전했다. 나와 너를 넘어서는 우리의 의식을 필요로 하는 오늘입니다. 저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을 통해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공통의 행복을 지향하며 본인의 불행을 딛고 일어서려는 모습을 자주 대합니다. 더욱이 본인 스스로가 겪어온 고통의 나날들을 눈물로 고백하는 모습과 마주할 때는 마음이 아픕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와 이집트 이라크 지역민들이 다람살라를 찾아와 만남을 가졌을 때, 분쟁을 통해 가족을 읽은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겪은 고난 속에서 평화를 찾고 화합할 수 있는 행동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을 때는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살육하는 만행을 중단하기 위해 저 스스로 역시 최선을 다해 동참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새록새록 새로운 희망을 발견합니다. 우리라는 의식이 그 뒷받침이 됩니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저 스스로가 지구상의 인간은 동일하다는 부분을 사유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나는 티베트인이고 나는 불자이며 나는 달라이라마라서 특별하다고 한다면 나는 외톨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나의 형제이자 자매라고 여기는 바는 변함이 없습니다. 소통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편성을 고민하고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에 신중해야 합니다. 이는 붓다에게 기도만 올린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당신이 믿고 신앙하는 불교는 무엇인가 그 정체성을 파헤쳐 보세요. 나의 행복 인류의 평화는 스스로가 만들고 기여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신에게 인류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신이 이러한 기도를 들었을 때 분명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현 인류의 상황은 너희 인간들이 망친 결과이니 직접 해결하도록 하라.” 각자의 위치에서 바로 서서 바른 사유에 기반 한 자비심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매사에는 이치적인 접근을 해야 합니다. 때문에 항시 교육을 강조합니다. 과거 인간 내면의 평화는 종교적인 부분이 상당수 관여를 해 왔습니다. 오늘의 종교는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행복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차리고 배울 수 있는 교육이 보편화되는데 관심을 보여 주세요. 감정적인 부분들에 있어서의 집착들이 스스로는 물론 관계의 크고 작은 해를 입힙니다. 불교를 신앙하는 불자들은 심수심법의 사념처와 사성제 그리고 37보리분법과 관련하여 이해하고 수행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비교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팔정도는 계정혜 3학으로 모두 요약이 됩니다. 발보리심 수행을 한 이후로 일상에서 수행자 스스로가 환희심을 자주 일으킨다는 말을 합니다. 붓다의 아들이 되어 종성에 맞는 행을 하겠다는 서원을 하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 이후로는 일상의 모든 사유와 실천이 일체 종지를 이루는 씨앗이 됩니다. 바라밀을 얻기 위해서는 지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보시와 보시바라밀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지혜와 방편을 균형적으로 갖추어 두루 실천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방편은 보리심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일체 종지를 이루도록 합니다. 도를 수행할 기회를 갖는 것은 먼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정광명의 의식을 현행시키는 밀교의 영역 역시 인간의 몸을 근간으로 삼습니다. 도솔천의 천신조차도 인간의 몸을 부러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발심을 한 것에 대해 환희심을 내십시오. 이전의 내가 지은 복으로 세세생생의 업을 흘러 비로소 붓다의 법을 만나 수행할 수 있는 때가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위대한 스승 뽀또와께서는 붓다의 말씀을 사유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를 본 지인이 그 연유를 묻자, 의심을 끊고 훌륭한 법을 만나게 되었음에 환희심이 난다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칠지작법을 살펴보면 스승에게 법륜을 굴리시길 권청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경서들이 있습니다. 해설서는 문론 200부에 달하는 논장과 100부의 경장 대부분이 산스크리트어이며 그 가운데 빠알리본 역시 상당수 티베트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나란다 승원의 논서를 가장 여법하게 가지고 있는 분야는 단연 티베트 경서라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티베트인들은 즉각적으로 경서를 대할 수 있는 환경에 있으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보리심의 이익은 무엇인가요.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명약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보리심입니다. 윤회의 모든 고통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일체 종지를 이루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 윤회에 구속이 되어 있지만 허공계가 다 하고 중생계가 다할 때 까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사백송의 구절을 따라 윤회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중생은 다수입니다. 바른 불교도라면 다수의 이익들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내도록 해야 합니다. 윤회의 삶이 지닌 큰 의미를 헤아려 보도록 하세요. 악도에서 벗어나도록 하게 하는 다리가 바로 보리심입니다.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두루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생의 끊임이 없는 고통에 물들지 말고 바른 마음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인간의 몸을 받은 것을 선취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번뇌를 자처하여 나와 남을 나누고 타인을 경시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무량심을 생각하세요. 이성을 통해 지식적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마음이 무엇인가를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히 신에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부디 보리심을 일깨우고 신 구 의를 통해 실천할 수 있도록 본인 스스로 경각해야 합니다. 타인을 귀하게 여길수록 그 만큼 증장하는 것이 이타심입니다. 번뇌를 일으키는 것은 윤회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번뇌를 일으키기 쉬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번뇌의 발생이란 매우 쉬운 구조 체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체를 귀한 존재로 여기며 만족을 시키겠다고 마음을 내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수행이라고 일컫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행을 실천하지 않으면 중생과 불보살을 기만한 것이 됩니다. 스스로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우세요. 그리고 나의 벗과 이웃이 그 길에 동참할 수 있도록 격려하세요. 삶 역시 한 순간입니다. 이 몸은 잠시 빌린 것과 같습니다. 선한 행을 하면 공덕이 있음을 알고 이번의 선업 역시 항상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선재여, 선취란 무엇인가. 선근이란 어떻게 찾는 것인가. 지금 나에게 덕을 짓는 기회가 왔는데 어찌 무심코 흘려보낼 수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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