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마당 삼고 파도를 목탁 삼은 대불大佛의 전개-전북 김제 망해사
등록일 : 2008-06-23 동영상 




# 그래, 나도 도사가 되어야겠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낮은 산 하나로 세상을 등지고 앉은 절은 서쪽 바다만을 망망히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눈 푸른 스님 한 분이 소풍 나온 까까머리 소년들에게 사찰 창건 설화며 그 절에서 살던 고승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사이, 절벽 아래 파도는 하늘과 바다가 전하는 말을 묵묵히 실어 나르며 소년에게 말을 건넵니다.


절은 작지만 유서가 깊습니다. 671년(의자왕 2년) 부설스님이 이곳에 처음 사찰을 지었으나 그때의 절은 땅이 무너져 바다에 잠겼고, 조선시대인 1589년(선조 22년)에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세웠다는 스님의 말씀이 끝날 무렵, 이야기를 듣던 소년의 눈빛이 일순간 반짝였습니다. “그래! 나도 도사가 되어야겠다.”






# 작지만 큰 절, 망해사


지평선을 옆에 두고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들은 끝나지 않을 태세입니다. 혹여나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만큼 실컷 달리고 나면 그제야 망해사 간판이 눈에 들어오려나, 근처에 바다가 있으리라곤 상상하기 힘드네요. 시인 김용택의 표현대로 ‘봉준이 키보다 낮게 엎드린’ 해발 72m의 진봉산 고개를 넘어서니 그제야 바람결에 짭조름한 냄새가 섞이고, 구불구불 길을 걸어 절 마당에 들어서면 김제 들판보다 너른 서해가 찰방거리며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앞에 낮은 듯 포근히 안긴 절은 너무도 왜소하여, 한 바퀴 눈으로 훑으면 극락전, 낙서전, 범종각, 요사채, 새로 지은 삼성각 그게 다이니, 손바닥만 하다는 세간의 표현이 과연 그렇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망해사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절 바로 앞에 있는 바답니다. 몇 채 안 되는 전각들을 둘러보고 잠시 쉴 겸 삼성각 앞 계단에 앉으니 절도 바다도 한눈에 들어오는데, 아! 그렇네요! 세상에서 망해사 만큼 큰 절은 없을 듯 합니다. 저 멀리 수평선까지, 아니 수평선 너머 보이지 않는 세상까지 모두 절 마당이니 낙서전에 걸렸다는 진묵대사의 시에 무릎을 탁 칠 수밖에요!


天衾地褥山爲枕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로 산을 베개로 삼았도다.


月燭雲屛海作樽   달은 촛불이요 구름 잡아 병풍치고 바닷물로 술잔을 기울이며


大醉擧然因起舞   크게 취해 한바탕 멋진 춤가락을 추고 싶은데


小嫌長袖掛崑崙   이놈의 장삼이 곤륜산에 걸쳐 거추장스럽구나.



# 생사대사의 문제는 여기에


산 너머 바깥세상도 잊고, 한참을 망해사의 너른 품에 안겨있는데 청설모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서 재빠른 걸음을 옮깁니다. 순간, 생의 정점에 있던 봄꽃은 후두둑 땅으로 내려앉고, 고개를 돌려 바라본 바다에는 찬연하던 태양이 어느새 누그러져 침잠하고 있습니다.


생(生)과 사(死)의 문제는 호흡지간이라 했던가요. 문득 살아간다는 일, 그래, 죽어간다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을 듯싶습니다. 그러니 망해사 앞 망망한 바다를 바라본 이라면, 그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는 저녁 해를 만난 뉘라면 누군들 생사의 문제를 외면할 수 있을까요.


아스라한 낙서전을 뒤로 하고 나오는 길, 아까 그 까까머리 소년은 어느새 진묵대사와 같은 호기로움으로 한바탕 멋진 춤가락을 추고 있습니다.






















출처 : 맑은소리 맑은나라 2008년 6월호
류지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