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24일 해제법회…해제철 정진 다짐
방장 원명 스님 “걸음걸음 근본을 살펴야”

어느 해보다 뜨거운 폭염과 밤잠마저 설치게 한 열대야가 이어진 올 여름. 하지만 일대사 해결을 서원하며 화두를 든 영축총림 선방 수좌 스님들은 선풍기 소리마저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정지시킨 채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정진을 거듭했다. 그리고 스님들은 그 땀의 흔적들을 미련 없이 지운 채 다시 길을 떠났다. 불기 2554년 하안거 해제일인 8월 24일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정우)를 찾았다. 스님들을 위한 선원만 6곳이 운영되는 이곳 영축총림에서 지난 5월 28일부터 3개월 동안 하안거를 지낸 스님들이 이른 아침부터 본사 설법전에 모였다. 늦여름의 열기가 한껏 달아오르고 있는 야외와는 달리, 총림 대중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가득 들어선 설법전 안은 오히려 고요함 속에 청량감이 감돌았다. 시계가 오전 8시를 가리키자 바로 해제 법회가 시작됐다. 법석에 오르는 횟수가 많지 않은 방장 원명 스님도 이날만큼은 법상에 올라 수좌 스님들과 마주했다 
원명 스님은 “오늘이 해제 날 이라고들 말하지만 애초에 묶어 놓은 적도 없는데 무엇을 풀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법어의 서두를 열었다. 스님은 “공부가 조금 수월해지고 진보한 듯해도 아직 과정에 불과할 뿐이니 혼신을 다해 깊숙이 살펴서 넓고 큰 바다와 같아지길 바란다”며 “산문을 나서는 납자는 걸음걸음 근본을 살필 줄 알아야 할 것”이라고 형식을 떠난 수행의 가치를 강조했다.
 
영축총림의 선방 체제는 1984년 새롭게 구축됐다. 본사 보광선원을 중심으로 6곳의 수행 공간에서 스님들은 오전 3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사분정근으로 하루 10시간 이상 좌선에 들었다. 안거 기간 중 매월 음력 15일과 30일마다 본사에 모여 포살법회를 가질 때는 본사 소임자는 물론 말사 주지 스님들도 참여해 왔다.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은 “선방의 수좌 스님만이 아니라 강원과 율원, 염불원에서도 각자의 정진을 이어가며 3개월을 지내는 모습 또한 총림의 특징일 것”이라고 총림의 수행 가풍을 전했다. 스님의 설명처럼 영축총림에서 이번 하안거를 보낸 스님은 총 300명이다. 본사 보광선원 안거대중 47명, 산내암자인 극락암 호국선원 28명, 서운암 무위선원 21명, 무문관인 조계암 대적선원 7명, 비구니 도량인 석남사 정수선원 49명, 내원사 동국제일선원 39명이 정진을 이어갔다. 또 강원과 율원, 큰절 소임자 등 150명도 하안거의 결제와 해제를 함께 했다. 이밖에도 취운암 보살선원, 부산포교원 시민선원, 홍법사 무위선원 등의 재가불자 106명을 포함하면 총림의 하안거 정진 대중은 400명이 넘는다.
특히 스님은 “지난 4년 동안 수행하는 스님들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며 “여름 안거 때 선풍기도 틀지 않고 정진하는 스님들을 위해 보광선원 앞마당에 잔디를 깔아 지열을 식혔고, 4년 동안 소나무 숲의 잔가지와 외래종 나무도 정리해 포행로를 조성했다”고 소개하며 도량의 새로워진 모습을 언급하기도 했다.
 
해제 법회가 끝난 후 통도사 산내암자 중 한 곳인 극락암에 올랐다. 한국 근현대 선불교를 대표하는 선사 경봉 스님의 법향이 면밀하게 흐르는 이 도량에는 경봉 스님의 상좌 명정 스님이 선원장을 맡고 있다. 명정 스님은 호국선원에서 정진한 수좌 스님들과 해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명정 스님은 이날 다음 안거를 어디서 날까를 놓고 담소를 나누던 수좌 스님들에게 “수행은 여기 저기 왔다가는 휴식이 아니다. 길게 보면 이번 생애 깨달음을 얻겠다는 각오이어야 하고 이번 생애보다는 올해, 올해 보다는 이번 철에 깨달음을 얻겠다고 다짐을 해야 한다”면서 “그러한 발심으로 정진해야 제대로 한 철을 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수행정진 자세를 보다 확고히 할 것을 주문했다. 스승이 제자에게 보내는 경책이다

가을 수확을 앞둔 벼도 강한 햇살 아래에서 여물 때 알찬 결실을 맺는다고 했던가. 뜨거운 날씨도 물릴 만큼 열정어린 정진의 시간을 보낸 스님들이 다시 산문 밖으로 운수의 만행을 나설 때, 그 길은 근본을 밝히는 일이며 이번 생애 반드시 이룰 각오를 실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시작일 것이다.
양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다음은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원명 스님 2010년 하안거 해제 법어(解制 法語) 전문.
 
水盡險途歸海碧 (수진험도귀해벽) 이요
稻經多日得秋黃 (도경다일득추황) 이라
此庵從古無餘物 (차암종고무여물) 하니
松竹連天一色長 (송죽연천일색장) 이로다
물은 굽이굽이 거쳐서 넓고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벼이삭도 여러 날 햇볕을 견뎌야 가을에 누렇게 익네.
이곳엔 옛 부터 다른 물건은 하나도 없고
송죽만 하늘과 맞닿아 일색으로 푸르구나.
오늘은 모두가 (解制)해제 날 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고인이 말하기를 “애초에 묶어 놓은 적도 없는데 오늘 무엇을 풀려고 하는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본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범부와 성인을 뛰어넘는 근본 도리를 밝혀보려고 모두들 한 철을 두문불출하고 애를 썼습니다. 나름 약간의 성취도 있었겠지만 과연 깊이 했었는지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곧바로 바다 속에 들어가 힘껏 물질을 해 보아야지
억새꽃이 얕은 물에 급히 흘러가는 것에 속지 말지어다.”
이렇게 고구정녕한 경책의 말씀을 남겨 두었습니다.
이 말씀 한마디만으로도 (河海)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었다 할 것입니다.
공부가 조금 수월해지고 진보한 듯해도 그것은 아직 과정에 불과 할 뿐입니다.
조금 애쓰다 놓아버리면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게 됩니다.
고인의 말씀처럼 혼신을 다해 깊숙이 살펴서 넓고 큰 바다가 되어야지 얕은 물처럼 소리만 요란해서는 안 됩니다.
산문을 나서는 납자는 걸음걸음이 근본을 살피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산 아래 길을 알고 싶으면 지나온 사람에게 물어보라.” 했습니다.
무수한 난관을 지나 온 이에게 물어서 거듭 헤매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선지식은 바로 그러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분명하게 지시해 줄 것입니다.
해제는 자신의 막힌 곳을 선지식에게 묻고 골똘히 해서 명철하게 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한 철 동안 애쓴 것이 헛되지 않게 운수납자의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와서 다시 한 바탕 애를 써 보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無事漢)무사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一肩霞衲任風塵 (일견하납임풍진) 이여
定靜工夫不是眞 (정정공부불시진) 이라
虎穴魔宮隨處樂 (호혈마궁수처락) 하니
逍遙天地作閑人 (소요천지작한인) 이로다
어깨에 누더기 걸치고 풍진에 내 맡김이여!
고요한 곳의 공부는 진실하다 할 수 없네.
호혈과 마궁에서도 마음대로 즐길 수 있어야
천지를 소요하는 한가로운 이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