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 동국대 교수, 성철 스님의 대사회 인식 분석

1960년 대 팔공산 성전암에서 8년 장좌불와 할 때 사찰 주위에 철조망을 치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은 성철 스님. 성철 스님이 5ㆍ16 뒤 특명을 받은 장교가 찾았아와 권총을 뽑아 공포탄을 쏘아도 꿈적치 않은 일화는 유명하다.
군사독재의 시절, 민주화의 물결이 넘실댈 때에도 스님은 ‘가야산 호랑이’로 평생 수행에 전념했으며 친견을 하기위해서는 3000배를 해야 한다는 관문을 만들고 대중과의 소통을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3년 입적 후에는 다비식장에 모인 문상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이후 여론조사에서도 해방 이후 우리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꼽히고 있다.
스님이 시대의 희망으로 불교계를 넘어 일반인 모두에게 존경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계 내부의 자정과 쇄신, 사회역량 강화의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성철 스님의 대사회 인식을 조명해 그 방향을 찾고자 한 논문이 발표됐다.
9월 23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서 열리는 성철스님문도회의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제3차 학술포럼’에서 김성철 동국대 교수는 ‘현대 한국 사회와 퇴옹 성철의 위상과 역할’ 기조발제를 통해 성철 스님의 사회적 인식을 분석한다.
“불교 본질 회복 통한 시대역량 강화”김 교수는 포럼에 앞서 발제문을 통해 “성철 스님의 활동기는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기와 겹치지만 대중법문은 물론 1981년 조계종 종정 취임 이후 그 어떤 법문에서도 정치 현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적시하며 “이로 인해 김수환 추기경이나 문익환 목 등 한국 사회 급변기, 사회에 적극 관여한 종교인들과 비교해 성철 스님의 행적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성철 스님은 당시 한국의 출가자가 해야 할 일은 섣부른 사회 참여가 아니라 불교의 본질 회복이었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1960년대 이후 큰스님들이 우리나라 산중의 사찰에 안 계셨다면, 한국 불교의 미래는 지금과 같이 정착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 가운데 쇠락했던 불교를 일으키고 출가자의 위상을 회복하고자 수행자의 본분을 오롯이 지킨 분이 바로 퇴옹 성철 스님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스님은 승가의 위상 회복이란 상부구조를 바로잡음으로써 사회변혁이란 하부구조를 변화시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성철 스님을 철저한 수행자로 정의하면서 불교적 사회 참여에 대한 입장도 피력했다.
김 교수는 “불교적 사회 참여에는 어떤 정형이 있는 게 아니라 상황과 상대에 따라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몸을 나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는 문무왕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소 박사의 ‘현대 한국 사회에 투영된 퇴옹의 삶과 사상’, 최원섭 성철선사상연구원 연구원의 ‘불교의 현대화에 담긴 퇴옹 성철의 의도’도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