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선거 넘어 관행 타파 해야
등록일 : 2012-01-30 동영상 

이른바 ‘돈봉투’ 논란에 범어사는 물론 조계종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한 듯 총무원장이 직접 나서 수습에 나섰으나 교계는 물론 세간의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지난 27일 호법부장과 함께 범어사로 내려가 범어사 주지, 입후보 예상자는 물론 범어사 중앙종회의원까지 참석하는 간담회를 요청했다. 서울에서 본사주지협의회 모임이 있었으나 불참하고 직접 범어사까지 내려간 것은 그만큼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당초 자승스님은 이 자리에서 범어사 주지 후보 선거일정 잠정 연기를 교구선거관리위원회에 요청하고 모든 후보자들이 참회정진을 요청할 것으로 전해졌다. 기획실장 정만스님은 범어사 간담회가 열리던 시각, 본사주지협의회 회의에 출석해 총무원장의 이같은 의중을 각 교구 본사 주지스님들에게 전했다.



총무원장 범어사 직접 찾아


범어사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총무원장을 비롯해 범어사 주지 정여스님, 호법부장 혜오스님, 수불·범산·원정 스님 등 주지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주지후보예정자, 무관·정오 스님 등 범어사 중앙종회의원과 원범·정산 스님 등 범어사 문중의 직능대표 중앙종회의원 등 10여명이 참석했다. 또 다른 출마예상자인 전 호법부장 상운스님은 병원 입원을 이유로 불참했다.


간담회 참석자들은 △교구선관위의 선거 일정과 관련한 결정이 있기까지 후보예정자들은 기도 정진할 것 △범어사 주지와 교구선관위, 후보예정자가 모여 산중고유의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선거 일정 등 비롯해 제반사항을 결정하고, 그 결과는 총무원 기획실에서 공식발표할 것 등을 결의했다.


범어사 교구선거관리위원회는 당초 2월 27일을 주지후보 선출일로 공고할 계획이었으나, ‘돈봉투’ 논란이 불거진 마당에 선거일정을 예정대로 추진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4.11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로 연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당초 총무원장이 직접 선거 연기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총무원의 본사주지 선거개입’ 논란을 우려한 듯 연기에 대한 직접 거론은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어사 교구선거관리위원회는 이튿날인 28일 오후 3시 긴급회의를 소집해 주지 선거와 관련한 일정을 논의했다. 선관위 회의 결과 역시 총무원을 통해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범어사 넘어 불교 전체 비난 우려


아직 교구선관위의 발표를 앞두고 있으나 이 역시 선거일정 연기라는 유례없는 카드까지 나온 것은 범어사 주지 선거 문제가 단지 범어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조계종의 위상과 직결되는 것은 물론 불교계 전체가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돈봉투’ 논란은 조계종이 1년 전부터 이야기하고 있는 ‘자성과 쇄신 결사’에 찬물을 끼얹었으며 현 상황을 빨리 수습하지 못할 경우 ‘자성과 쇄신 결사’ 전체가 비아냥거림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범어사 간담회에서 자승스님은 “(이번 사태가)범어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종단의 위상과 직결되는 것”이라며 “특히 자성과 쇄신결사를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느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중요한 사항”이라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 관계자 입단속…호법부 보도 사실 확인


이와 함께 주지 선거 출마예정자는 물론 범어사 관계자들에게도 ‘입단속’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이번 사태의 시발이 조계종 내부 관계자가 언론에 의혹을 흘리고 이를 통해 무언가 이득을 취하려 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공익을 위한 내부 고발자’라는 측면보다 ‘자해 행위’에 가깝다고 본 것이다. 27일 본사주지협의회에서도 “내부의 제보가 없었다면 (보도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총무원 호법부는 KBS 보도에 익명으로 등장해 “다른 후보들이 많이 한 것 같다”며 상대 후보가 돈봉투를 돌렸다는 의혹을 제기한 인물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실장 정만스님은 “원장스님이 ‘돈봉투’ 논란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해 엄중 조치하라고 호법부에 지시했다”고 본사주지협의회에 보고했다. 조계종은 KBS 등의 보도와 관련해서도 사실 확인을 통해 항의할 부분은 강력히 항의하고 사실과 다를 경우 정정보도를 요청해 편파적인 방송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범어사 주지 선거는 상황이 이처럼 전개됨에 따라 경선이 치러지기 보다는 합의 추대형식을 취해 선거과정 없이 차기 주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교계 안팎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분위기여서 이에 대한 관행의 타파 없이는 조계종 선거를 둘러싼 의혹을 씻어내는 것은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동화사 주지 성문스님은 본사주지협의회에서 “터질 게 터졌다”며 “1994년 종단개혁 이후 마련된 선거제도에서 (금권선거 논란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문제였다”고 말했다. 선거제도에 대한 개혁 없이는 문제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식 변화·관행 타파 없으면 ‘자성과 쇄신’ 구호 전락


산중총회법, 총림법, 선거관리위원회법, 중앙종회의원선거법 등으로 분산된 선거법의 손질과 사전선거운동에 대한 금지, 선거감시, 선거공영제도의 도입 등 공명선거를 위한 제도 개선 등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중앙종회를 중심으로 조계종 선거법 개정을 위한 논의를 벌이고 있으나 각 계파 문중 간 셈법이 달라 대안을 쉽게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제도의 개선에 앞서 종도들의 기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교계 안팎의 일관된 지적이다. ‘대중공양’이라는 불가의 아름다운 전통을 선거에 악용하거나 종책 수립과 비전 제시는 제쳐두고 인맥으로 선거를 치르려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문제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후보자에게 각서를 받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자성과 쇄신’도 ‘5대 결사’도 구호로 그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