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11시50분경…세납 85세‧ 법납 73세
“연명치료 중단”요구 뒤 좌탈…장기기증 실천
“빈소 마련‧영결식 하지 말라” 당부 남기기도

이 시대 최고의 불모(佛母)로 추앙 받았던 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佛畵匠) 석정 스님이 12월20일 오후 11시 50분경 입적했다. 세납 85세, 법랍 73세.
노환 등으로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수일 째 치료를 받던 석정 스님은 이날 세연이 다했음을 알고 “연명치료를 중단할 것”을 상좌들에게 지시한 뒤 병실 침대에 앉아 좌탈(坐脫)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정 스님은 입적에 앞서 “(내가 세연이 다 되었으니 죽더라도) 그 소식을 알리지 말라”고 상좌들에게 당부한 뒤 “빈소는 물론 영결식도 하지 말 것과 생명나눔본부에 장기기증 서약을 했으니 그 절차대로 진행할 것”을 유언했다. 이에 따라 문도회는 스님의 유언에 따라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상좌들에게만 입적 소식을 알렸고, 장기기증 서약에 따라 12월21일 오전 11시경 스님의 법구를 동국대 경주병원으로 이운했다.
석정 스님은 1928년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면에서 일제에 항거하다가 출가해 당대의 선지식으로 추앙 받았던 석두 스님과 신여성 운동가였던 이춘봉 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석두 스님의 문하에 있던 효봉 스님을 비롯해 향봉, 화봉, 계봉 스님 등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익혀 6세 되던 해 ‘금강산 신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 1938년 효봉 스님이 아버지 석두 스님을 전남 송광사로 모시고 내려가자 석정 스님은 2년 뒤 아버지를 찾아 남하해 출가수행자의 길에 들어섰다. 1940년 아버지 석두 스님을 은사로, 대우 스님을 계사로 출가한 석정 스님은 강원에서 경전을 익히며 불교의 진리를 체득해 나갔다.
석정 스님이 불모로서의 길을 걷게 되는 결정적인 인연을 만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마침 사천왕상 보결불사로 송광사에 와 있던 당대 최고의 불모 일섭 스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어려서부터 탱화 그리는 것에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석정 스님은 일섭 스님을 친견한 뒤 곧 자신을 제자로 맞아 줄 것을 청했다.
일섭 스님으로부터 체계적인 불화 수업을 받은 석정 스님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특히 스님은 14세에 불상을 조성하고 15세에 불화를 그려 전국의 불가에서는 ‘소년 불모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지기까지 했다.
이후 스님은 60년간 불모로 활동하며 현대 한국불화 분야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30대 후반부터 50대 무렵까지 전국 각지의 사찰불사에 참가해 수많은 탱화와 불화를 그렸다. 웬만한 전통사찰에 보관된 탱화가운데 석정 스님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스님은 스스로도 최고의 불사로 꼽는 ‘송광사 삼세여래탱 삼축’을 완성했으며, 후학양성과 한국불화의 계승 발전을 위해 1995년부터 현존하는 국내 불화를 집대성한 ‘한국의 불화’를 발간하기 시작해 2007년 총40권을 완간했다. 이 책에는 조계종 교구본사 등 476개 사찰과 14개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3156점의 불화가 수록돼 있다.
스님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으로 지정됐다. 또 2006년 불화가 단청분야에서 분리되면서 스님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으로 지정됐기도 했으며 2007년 대한민국 문화포장(보관훈장)을 수상했다.
스님은 불모이면서도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스님은 아버지이자 은사였던 대선사 석두 스님의 영향으로 해인사에서 3년간 습의 산림에 참가하는 등 화두참구에 열중했다. 그런가하면 스님은 지난해 8월 생명나눔실천본부에 장기기증을 서약하면서 출가수행자로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기도 했다. 그리곤 12월20일 스님은 자신의 약속에 따라 법구를 사바세계에 회향한 뒤 적멸에 들었다.
한편 석정 스님의 문도회 측은 “스님의 유언에 따라 별도의 영결식을 갖지 않고 문도들이 참여한 가운데 49재만 봉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