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문도회, 25일 추모다례제 봉행…유품전시·‘계율’ 학술세미나 등 개최

조계종 9대 종정이자 영축총림의 정신적 지주였던 노천 월하 대종사 선양사업이 시행된다.
청담·효봉·금오·동산 스님과 함께 근대 한국불교 정화운동 5인의 한 사람인 노천당 월하 스님은 올해 탄신 100주년을 맞는다.
월하 스님 상좌와 손상좌, 증손상좌가 중심인 노천문도회(문장 초우 스님, 문도대표 성파 스님)는 오는 25일 10시 ‘탄신 100주년추모다례제’를 보광전에서 봉행한다. 이어 노천당 월하대종사 일대기인 <영축산에 달 뜨거든>을 봉정하고, 노천 스님 유물전과 ‘계율을 통한 수행의 재조명’ 학술세미나를 잇달아 연다.
월하 스님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재조명한 <영축산에 달 뜨거든>은 ‘고승열전’ 작가인 윤청광 씨가 썼다.
월하 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특별전(유품전)은 통도사 성보박물관 2층에서 25일부터 3개월간 상설 전시된다. 월하 스님 유품전에는 발우와 가사·장삼, 안경, 경전류 등 스님이 생전 즐겨 쓰던 물건들이 전시된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의 전신이 노천유물전시관이다. 월하 스님은 생전 평생 모은 30억 원과 각종유물 상당수를 통도사 성보박물관 건립을 위해 기증했다.
월하 스님 탄신100주년 기념 세미나는 정화불사의 기수였던 스님의 정신에 맞춰 ‘계율을 통한 수행의 재조명’을 주제로 25일 오후 2시 통도사 해장보각(도서관)에서 열린다.
홍광표 동국대 교수를 좌장으로 조계종 원로의원 월탄 스님이 ‘우러하 스님의 정화불사’를 기조발제한다. 이어 소운 스님(동명대 교수)이 ‘계율정신에 입각한 월하 스님의 수행’을 발제하고, 이희선 한양대 교수가 토론한다.
또 하춘생(동국대경영대학원) 교수가 ‘월하 스님의 포교인식과 실천이념’을 발제하고, 정성준 연구원(동국대 티베트장경연구소)이 토론한다.
이어 이혜숙 금강대 교수가 ‘근대불교복지의 회고와 전망-월하 스님의 자비원 설립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제하고 이용권 전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사무국장이 토론한다.

노천당 월하 대종사 선양사업은 올해 처음이지만 그동안 통도사가 근현대한국불교사 연구와 관련 서적을 편찬하는 등 통도사 중심의 일련의 근현대조명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월하 스님은 영축산의 자비화신으로 이름 높았다. 조계종 사찰 성보박물관의 모범인 통도사 성보박물관이 노천 스님의 원력으로 시작됐고, 종단 최초이자 교구본사 최초로 복지법인인 자비원을 설립하는 등 자비행을 걸었다.
월하 스님의 기개는 유명하다. 94년 개혁종단에 힘을 보탠 스님은 개혁종단 출범 이후 개혁불사의 정신이 퇴색되어가고, 종헌을 위배한 총무원장 3선 도전과 도박·은처 문제에 서릿발 갓은 추상으로 총무원장 등 집행부를 질타하는 교시를 내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월하 스님의 서릿발 같은 기개는 금강산에서 출가해 통도사를 국내 최고의 도량으로 일구는 데 근간이 됐다. 월하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이 태동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정화불사의 5인으로 비구 종단을 세우는 데 헌신했다.
월하 스님의 정신을 선양하는 것은 비구종단의 정신을 계승하고, 종단개혁 20주년을 맞아 개혁불사에 힘을 실어 준 당대 큰 어른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월하 스님 기념사업은 노천문도회가 지난달 18일 문도회의를 열어 결정했다. 월하 스님 탄신 기념사업과 함께 영축문화재단이 주축이 돼 근대 개화승인 이동인 스님을 비롯해 구하 스님을 재조명 하는 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동인 스님은 양산에서 태어나 한 때 통도사에서 생활한 것으로 전해진다. 법명은 천호(淺湖)이다. 유대치 김옥균 등 개화파와 친분이 투터웠고, 조선 정부 밀사로 일본에 파견되는 등 외교관으로도 활약했다.
구하 스님은 영축통림 통도사의 기틀을 닦는 근대 고승이다. 일제강점기 통도사 주지를 지냈고,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비밀리에 보내는 등 항일운동에 기여했다. 법명은 천보, 법보는 구하, 자호는 축산이다.
노천 월하(老天 月下) 스님은 1915년 음 2월 25일 충남 부여군 군수리 파평 윤씨 집안에서 출생했다. 1933년 7월 18세에 강원도 유점사에서 차성환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 득도했다. 1940년 4월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한 후 오대산 한암 스님 회중에서 하안거를 성만했으며 1944년 4월 철원 심원사에서 대교과를 졸업했다.
1950년부터 1980년까지는 불보종찰 통도사 전계화상으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79년 조계종 총무원장, 1980년 종정 직무대행 등을 역임했으며 1984년에는 영축총림 방장으로 추대됐다.
1994년 종단개혁 때는 조계종 개혁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1994년에는 조계종 제9대 종정으로 취임했다. 2001년부터는 다시 영축총림 방장으로 재추대되어 한국불교의 수행가풍을 세우는데 전념하다 2003년 음력 11월 11일, 통도사 정변전에서 세수 89세, 법랍 71세로 열반에 들었다.
노천문도회는 초우 스님을 문장으로 성파 스님(조계종 원로의원)이 문도대표를 맡고 잇다. 현문 스님(전 통도사 주지)은 문도 부대표다. 성파 스님은 지난달 18일 문도회의에서 “하나도 둘도 화합이다. 어른 스님의 유지를 잘 받들어 불교정화 이념을 계승하고 사회복지 등에 관심을 기울여가자”고 했다.
기념사업 관계자는 “월하 스님을 선양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재구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월하 스님의 정신과 사상을 정립해 불지종가에 걸 맞는 발전과 정신을 함양하는 불지종가에 걸맞는 위상을 찾아갈 계획이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