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말 제작된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보물된다
등록일 : 2019-01-26 동영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6호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東 三層石塔)’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1월25일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이하 동 삼층석탑)’을 보물로 지정예고 했다.

동 삼층석탑은 성주사지에 남아있는 4기의 탑 가운데 하나다. 성주사는 847년 낭혜화상(800~888, 신라 후기 무염 스님)이 개창해 17세기까지 사찰의 명맥을 이어오다가 조선 후기 폐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보령 성주사지(사적 제307호)에는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 제20호, 이하 중앙 삼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 제47호, 이하 서 삼층석탑)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동 삼층석탑은 금당 후면에 다른 2기의 석탑과 함께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국내에는 이와 같은 가람배치 예가 없다. 금당 전면에 오층석탑 1기를 조성해 탑과 금당 각각 하나씩을 남북축선상에 나란히 배치하는 1탑 1금당 형식의 가람배치를 조성한 후 배면의 석탑 3기를 다른 곳에서 옮겨와 추가로 배치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금당 배면 3기의 석탑 중 서·중앙 석탑 2기는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됐다.

동 삼층석탑은 조성 양식으로 보아 다른 2기의 삼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말기에 같은 장인에 의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총 높이는 4.1m로 2층 기단위에 3개의 층으로 구성됐으며 기단 상부에 괴임대 형식의 별석받침(별도의 돌로 만든 받침석)을, 1층 탑신 전‧후면에 문고리와 자물쇠가 표현된 문비(문짝 모양)가 조각된 점 등으로 볼 때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 석탑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이미 보물로 지정된 2기의 탑 못지않게 균형 잡힌 비례와 체감, 우수한 조형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지정가치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동 삼층석탑 보물 지정예고와 함께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은 보물 제2013호로 지정됐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7호였던 사리탑은 경기도 남양주시 운길산 수종사에 전해오는 석조 사리탑으로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보물 제1808호), 삼층석탑(비지정)과 함께 대웅전 옆에 자리하고 있다.



처마가 두터운 옥개석 낙수면에는 ‘太宗 太后/貞惠 翁主/舍利 造塔/施主 文化 柳氏/錦城 大君 正統/四年 己未 十月日(태종 태후/정혜 옹주/사리 조탑/시주 문화 류씨/금성 대군 정통/사년 기미 십월일)’의 명문이 오목새김(음각)돼 있다. ‘태종의 딸 정혜옹주의 사리탑을 문화 류씨와 금성대군(1426~1457)이 시주하여, 정통 4년 기미년(1439년) 10월에 세웠다’는 뜻으로 이를 통해 1439년(세종 21년)에 왕실의 발원으로 제작됐으며 태종 이방원(1367~1422)의 딸 ‘정혜옹주(?~1424)’를 위한 사리탑인 것으로 확인된다.

정혜옹주는 태종의 후궁 의빈 권씨(1384~1457)가 낳은 딸로 1419년 운성부원군 박종우(朴從愚, ?~1464)와 혼인했으나 5년 만에 죽었다. ‘남양 수종사 사리탑’은 옥개석 명문을 통해 어린 시절 의빈 권씨가 키운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의빈 권씨는 태종 사후에 출가했으며 금성대군 역시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은 “이 사리탑은 지대석으로부터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옥개석과 상륜부가 완전히 남아 있으며 조선 초기 양식으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각 부에 새겨진 문양의 우수성과 승탑의 형식으로 정혜옹주를 추모한 특이성이 있다”며 “조선 초기 왕실의 불교신앙과 그 조형의 새로운 경향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지정가치가 크다”고 말했다.